
네 번째 구장은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다. 해당 이름의 주인공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오직 로스 블랑코스에만 헌신했던 인물이다. 선수 시절을 레알에서 보냈던 베르나베우는 은퇴 이후에는 감독직과 단장직을 역임했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이 끝나자 1943년 레알의 회장직으로 부임했다. 베르나베우는 무려 35년 동안이나 회장직을 역임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최장 임기다.
베르나베우가 레알 회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구단의 상황은 처참했다. 스페인 내전이 끝난 이후 선수단에 남아있던 선수들은 4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전력이 약해졌다. 거기에 홈구장으로 쓰였던 차마르틴 구장은 폭격으로 인해 망가져 있었다. 관중석은 불을 피우기 위해 목재를 가져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허물어졌다. 레알은 지금처럼 승리하는 팀이 아니었다.
회장으로 취임한 베르나베우는 내전의 후유증을 빠르게 개선하고자 했다. 기존의 홈구장을 대신할 구장을 짓기 시작했고 우수한 선수들을 영입하거나, 육성하는 데 주력했다. 해당 기간에 레알의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베르나베우는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데 주력했다.
베르나베우의 이런 노력은 1950년대가 돼서야 거대한 성과를 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프란시스코 헨토, 레몽 코파, 페렌츠 푸스카스, 호세 산타마리아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한 레알은 1950년대 오늘날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5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베르나베우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회장으로 평가받는다.
앞서 상술했던 구장들은 모두 당사자들이 사망한 이후에 붙여졌다. 그러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구장이 베르나베우의 이름을 딴 것은 그가 살아있을 때였다.
본래 베르나베우는 새로운 구장의 이름을 ‘누에보 차마르틴’이나 ‘카스테야나’로 짓고자 했다. 하지만 1955년에 구장의 공식 명칭을 결정하는 이사회에서 사람들은 베르나베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구장을 짓자고 제안했다. 이는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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