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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 “드림 클럽? 차라리 라이벌 클럽!”을 외친 선수들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축구 선수들은 선수 이전에 팬이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는 구단을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 뛰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생은 플랜 A만 고집할 수 없다. 플랜 B가 최선이 되기도 한다.

축구도 마찬가지. 수많은 선수가 드림 클럽이나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서 뛰기를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라이벌 구단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드림 클럽 대신 라이벌 클럽을 선택한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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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알론소

알론소의 아버지 페리코 알론소는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 구단인 레알 소시에다드와 FC 바르셀로나 선수 출신이었다. 알론소 역시 아버지가 뛰었던 바르사를 좋아했다.

소시에다드 유소년 팀에 입단한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여줬던 알론소는 1군에 데뷔했고 2002/2003시즌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소시에다드를 떠나 새로운 행선지를 찾아봤는데 그중에는 바르사와 레알, 그리고 리버풀 FC 등이 있었다. 알론소의 선택은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이끌었던 리버풀이었다.

2009년 정들었던 리버풀을 떠나기로 한 알론소는 레알과 바르사의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적극적이었던 레알에 마음을 빼앗겨 아버지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루카 모드리치

유망주 시절 모드리치는 ‘제2의 요한 크루이프’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수 본인도 크루이프를 우상으로 삼아 바르사 이적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바르사는 모드리치의 높은 이적료에 부담을 느껴 영입을 포기했다.

이후 바르사는 다시 한번 더 모드리치 영입을 시도했지만, 레알만큼 적극적이지 않았다. 결국, 모드리치는 레알로 이적했고 3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발돋움했다.

만약 모드리치가 레알이 아닌 바르사로 이적했다면 바르사의 천하는 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레알의 열 번째 챔스 우승도 나중에 이루어졌을 듯하다.

이스코

이스코는 발렌시아 CF의 유소년 선수 시절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레알은 선수에 대한 존중도 없고, 인간미가 없는 구단”이라며 자신은 레알을 싫어하는 ‘안티 마드리디스타’라고 밝혔다. 또한, 이 시기에 바르사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녔고 나중에는 개 이름을 ‘메시’라고 지을 정도로 바르사에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이스코는 바르사가 아닌 레알 이적을 선택했다. 당시 수석 코치이자 이스코의 우상이었던 지네딘 지단이 직접 선수와 만나 출전 시간 보장을 약속했기 때문.

하지만 이스코는 레알에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쳤다. 지난 시즌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최근에 다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메수트 외질

외질은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이후 “내 꿈을 바르사에서 뛰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구단이고 리오넬 메시와 같은 특별한 선수들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바르사는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최우선이었고 외질은 차선책에 불과했다.

결국, 바르사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조급함을 느낀 외질은 바르사의 라이벌인 레알 이적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도우미로 활약한 외질은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레알을 떠나 아스널 FC로 이적했다. 선수가 아스널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바르사는 외질의 영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외질은 잔류를 선택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프랑스 매체 ‘카날 플러스’는 바르사 유소년 시스템인 ‘라 마시아’를 다룬 특집 방송에서 12살인 이니에스타가 “내 꿈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것”이라고 말하는 영상을 방영했다. 그러나 이니에스타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니에스타는 레알의 영향력이 강한 카스티야 지방의 알바세테 주 출신이다. 이 때문에 원래는 레알에서 입단 테스트를 치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레알의 유소년 팀 훈련장 근처에 사창가가 있었고 이니에스타의 양친은 아들의 장래에 악영향을 주리라 여겨 바르사를 선택했다.

이후 이니에스타는 바르사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여줬고 사비 에르난데스와 리오넬 메시 등과 함께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필리페 쿠티뉴

쿠티뉴는 청소년 대표팀 시절 네이마르와 함께 스페인 언론 ‘마르카’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쿠티뉴는 “라 리가에서 뛰는 것이 내 목표다. 호비뉴와 호나우지뉴와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리그이기 때문”이라면서 “레알은 세계 최고의 팀이자 내 드림 클럽”이라고 밝혔다.

이후 쿠티뉴는 세대교체를 꾀했던 FC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세리에A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해 RCD 에스파뇰로 임대를 떠났다. 그리고 리버풀의 선수가 됐다.

리버풀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쿠티뉴는 이후 바르사의 관심을 받았다. 레알은 이스코를 비롯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결국, 쿠티뉴는 바르사로 팀을 옮겼다.

네이마르

레알은 네이마르가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 2005년 유소년 선수 계약을 맺을 뻔했지만, 아버지의 무리한 요구로 무산됐다.

비록 레알 유소년 팀 입단은 무산됐지만, 네이마르는 여전히 레알을 좋아했다. 네이마르는 스페인 언론 ‘마르카’와 가진 인터뷰에서 쿠티뉴와 함께 “레알에서 뛰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지난 2013년, 네이마르가 유럽 무대 진출을 선언하자 레알은 막대한 이적료를 제시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하지만 네이마르는 호나우지뉴와 호비뉴 등 브라질 선배들의 설득 때문에 바르사 이적에 마음을 뒀다. 여기에 바르사의 산드로 로셀 회장이 선수에게 초상권 100%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결국, 네이마르는 바르사로 이적했다.

가레스 베일

사우샘프턴 FC 유소년 선수 시절 시오 월콧과 함께 주목받았던 베일은 본래 아스널 FC 팬이다. 베일이 좋아했던 아스널 선수는 티에리 앙리와 파트리크 비에라였다. 훗날 아스널은 월콧과 베일을 영입할 기회를 잡았지만, 월콧 영입에만 성공했고 베일은 아스널의 라이벌인 토트넘 홋스퍼를 선택했다.

토트넘에서 뛰어난 성장세를 보여준 베일은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특히, 2012/2013시즌 엄청난 활약을 펼쳐 레알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관심을 받았다.

베일은 레알로 이적한 첫해 코파 델 레이와 챔스 결승전에서 결승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잦은 부상에 시달려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현재 프리미어 리그 복귀에 연결되고 있다.

마리오 괴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의 괴체는 바이에른주의 메밍엔 소속으로 어렸을 때부터 바이에른 뮌헨 FC의 팬이었다. 도르트문트 유소년 팀에 입단하기 전 본인의 우상은 과거 바이에른에서 뛰었던 지오바니 에우베르고 가장 좋아하는 구단은 바이에른, 가장 싫어하는 팀은 도르트문트라는 내용의 글을 적었다.

하지만 괴체의 미래는 도르트문트에 있었다. 8살에 도르트문트의 유소년 선수가 된 괴체는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1군에 데뷔했고 구단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2013년 도르트문트를 배신하고 라이벌 구단인 바이에른으로 이적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도르트문트로 돌아왔다.

제이미 캐러거

캐러거는 리버풀의 라이벌인 에버턴 FC의 팬이었다. 그러나 리버풀 유소년 팀에 입단했고 18살에 1군에 데뷔했다. 이후 마이클 오언과 스티브 맥마나만, 스티븐 제라드 같은 유소년 출신 선수들과 함께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리버풀의 부주장이었던 캐러거는 리버풀에서만 뛰었고 2010년에 은퇴했다. 현역 생활을 마감한 이후 영국의 ‘스카이 스포츠’에서 해설을 맡고 있다.

그러나 지난 12일 맨유와의 경기에서 패한 이후 자신을 도발한 팬의 딸에게 침을 뱉었다. 해당 사실이 빠르게 퍼지자 캐러거는 사과했고 이번 시즌 직무가 중단됐다.

마이클 오언

오언은 캐러거와 함께 에버턴의 팬이었던 선수다. 그러나 에버턴이 아닌 리버풀에 입단했고 빠른 성장세를 보여줬다. 16살 때 1군에 데뷔한 오언은 10대 때 2시즌 연속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2001년 라울 곤잘레스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거머쥐었다.

우승을 원했던 오언은 레알로 이적했지만, 호나우두와 라울 등에게 밀려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결국, 1시즌 만에 레알을 떠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선수가 됐지만,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그러던 2009년 리버풀 최대의 라이벌인 맨유와 계약을 맺어 논란을 일으켰다.

2013년 은퇴한 오언은 2016년 리버풀 앰배서더가 됐는데, 많은 리버풀 팬이 반발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