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카드 뉴스

[블랙데이 특집] 꼴도 보기 싫은 놈들 (ft. 밀란)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사람들은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주기 싫을 만큼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 생각하기도 싫은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잦은 부상이나 기대 이하의 모습을 펼쳐 비판받았다. 혹은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해 팬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에 풋볼 트라이브 코리아가 블랙데이를 기념해 ‘블랙데이 특집’을 준비했다.

*>버튼을 누르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모바일에서는 손가락으로 밀어(swipe)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히바우두

히바우두는 FC 바르셀로나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다 2002년 AC 밀란으로 이적했다. 영입 당시만 해도 히바우두에게 거는 기대는 엄청났다.

하지만 히바우두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체제에서 겉돌았고 바르사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이적한 지 1년 만에 밀란을 떠났고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으로 전락했다. 히바우두가 뛰었던 구단은 총 15개에 달한다.

이 브라질 선수는 2015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크리스티안 비에리

비에리는 히바우두와 함께 축구계를 대표하는 저니맨이다. FC 인터 밀란 소속이었던 이 이탈리아 공격수는 2005년 ‘호나우두의 후계자’라고 평가받았던 아드리아누에게 밀려 입지가 좁아지자 밀란과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05/2006시즌만 해도 밀란의 공격진은 최강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안드리 세브첸코를 비롯해 필리포 인자기와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같은 걸출한 선수들이 있었다.

결국, 비에리는 이적한 지 반년 만에 밀란을 떠나 AS 모나코로 이적했다.

이후 아탈란타 BC와 ACF 피오렌티나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갔지만, 2009년 은퇴했다.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루이스 판 할 감독의 AFC 아약스에서 데뷔한 클루이베르트는 1994/1995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밀란을 상대로 결승 득점을 넣어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빠른 성장세를 보여준 이 네덜란드 공격수는 많은 구단의 관심을 받았고 1997년 밀란으로 이적했다.

영입 당시만 해도 클루이베르트는 마르코 판 바스텐의 완벽한 후계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적은 출전 시간에 불만족했고 1년 만에 밀란을 떠났다. 차기 행선지는 은사인 판 할이 지휘하고 있었던 바르사였다.

바르사에서 기량이 만개한 클루이베르트는 2008년 은퇴했다.

페르난도 레돈도

레돈도는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다. 레알의 올타임 베스트 11을 뽑으라고 하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페렌츠 푸스카스, 프란시스코 헨토, 지네딘 지단, 페르난도 이에로 등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레알과 달리 밀란에서의 활약은 좋지 못했다. 2000년 밀란에 입단한 레돈도는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클라렌스 세도르프와 안드레아 피를로, 젠나로 가투소에게 밀려 경기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결국, 2004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클라스 얀 훈텔라르

훈텔라르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의 완벽한 후계자라고 평가받았던 공격수였다. 2009년 레알은 훈텔라르를 영입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펼쳤다. 설상가상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이 복귀한 이후 카림 벤제마를 데려오자 입지가 좁아진 훈텔라르는 반년 만에 밀란으로 떠났다.

영입 당시만 해도 밀란에서 날개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30경기에 출전해 7득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결국, 이적한 지 1년 만에 샬케 04로 매각됐다. 공교롭게도 샬케에서 맹활약해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현재 훈텔라르는 친정팀 아약스에서 뛰고 있다.

카카 칼라제

2001년 밀란으로 이적한 칼라제는 조지아의 국민 영웅이다. 전성기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테러단체에 의해 동생이 토막살해 된 이후 정신적 충격을 받아 기량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이후 어이없는 실수를 범해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10년 밀란을 떠나 제노아 CFC로 이적했다. 그리고 2012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후 칼라제는 조지아의 부총리를 역임했다. 작년에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시장직에 당선됐다.

디강

밀란의 전설인 카카의 동생. 형과 달리 수비수다. 에이전트였던 아버지가 밀란에 디강을 영입하라고 요구해 이적한 선수.

카카는 한때 최고의 선수였지만, 디강은 형편없는 수비력으로 밀란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너무 못해서 밀란에서 뛰었던 시간은 1시즌밖에 되지 않는다. 선수 경력 내내 임대를 떠났고 형과 비교되기 일쑤였다.

설상가상 카카가 레알로 이적하자 디강의 입지도 좁아졌다. 밀란과 계약이 만료된 디강은 MLS의 뉴욕 레드불스와 계약을 맺었지만, 2013년 은퇴했다.

오구치 오니우

미국 출신의 수비수인 오니우는 2009년 밀란으로 이적했다. 입단 초기만 해도 나름대로 기대를 모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부상으로 이탈했다.

시즌이 끝난 이후 1년 동안은 사죄의 의미로 연봉을 받지 않고 뛰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두 시즌 동안 밀란에서 오니우가 뛴 경기는 1번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시즌 도중 에레디비시의 FC 트벤테 엔스 헤데로 임대를 떠났다.

오니우는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현재 소속 팀이 없다.

이브라힘 바

1998년 밀란으로 이적한 바는 오늘날 폴 포그바처럼 헤어스타일을 자주 바꾸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여기에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악명 높았다. AC 페루자 칼초로 임대가 있을 때 상대 선수에게 아무 이유 없이 머리를 들이박은 사건이 대표적.

세리에A 적응에 완전히 실패한 바는 이후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로 임대를 떠났지만, 재기에 실패했다. 이후 볼턴 원더러스 FC를 비롯해 여러 팀을 떠돌아다녔지만, 어느 한 팀에도 자리 잡지 못했고 2007년 밀란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2008년 은퇴했다.

혼다 케이스케

2013년 밀란으로 이적한 혼다는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 번호 ‘10번’을 받았다. 하지만 혼다가 보여준 활약은 정말 형편없었다.

보다 못한 밀란의 전설인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는 “‘밀란의 10번’이 어떤 의미인지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 혼다가 데얀 사비체비치, 뤼트 굴리트, 후이 코스타, 세도르프가 달았던 10번을 달고 있는 걸 보면 속이 뒤집힌다”고 혼다를 혹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다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고 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결국, 2017년 멕시코 리그의 CF 파추카로 떠났다.

마티아 데 실리오

데 실리오는 10살의 나이에 밀란의 유소년 선수 팀에 입단했다.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밀란의 미래로 평가받았다. 일각에서는 파올로 말다니의 후계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레알 같은 빅 클럽의 오퍼는 날 기분 좋게 만든다”며 좋은 조건을 받는다면 언제든지 밀란을 떠날 수 있다는 발언을 심심찮게 했다. 설상가상 밀란 팬들과 언쟁을 벌였다.

결국, 지난여름 밀란이 리카르도 로드리게스를 영입하자 유벤투스 FC로 이적했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17경기를 결장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뉴욕 레드불스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