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뉴스 유럽 축구

[카드 뉴스] “잊지 않겠습니다” 축구계의 영구결번 모음

*NEXT 버튼을 누르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모바일 화면에서는 손가락으로 넘겨(swipe) 페이지로 넘길 수 있습니다.

[풋볼 트라이브=오창훈 기자] 영구결번: 스포츠나 항공기, 철도 등에서 특정 번호를 다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 구단들은 특정 선수를 기리기 위해 그 선수가 사용했던 번호를 앞으로 사용하지 않고, 영원히 결번으로 지정해놓곤 합니다. 축구계는 번호 규정 등 엄격한 제한 등의 이유로 영구결번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야구, 농구 등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나죠.

하지만, 몇몇 구단들엔 영구결번이 존재합니다. 이번 카드 뉴스에서는 대표적인 영구결번 사례들을 알아봅니다.

맨체스터 시티 No. 17 / RC 랑스 No. 23
마르크 비비안 푀(1975.05.01~2003.06.26)
카메룬 국적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푀는 188cm라는 우수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중원을 지배하는 선수였습니다. 1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1994 미국 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잠재력을 인정받기도 했죠. 당시 약체팀이긴 했으나, 맨체스터 시티에 이적하며 프리미어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2003년 6월 26일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전, 푀는 후반 26분경에 갑작스레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SL 벤피카 No. 29
미클로스 페헤르(1979.07.20~2004.01.25)
'푸스카스 시대'를 끝으로 기나긴 암흑기를 맞은 헝가리 축구, 2000년대 초반 페헤르는 혜성같이 나타났습니다. 페헤르는 포르투갈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명문 구단 SL 벤피카로 합류하게 됐죠. 그러던 2004년 1월, 페헤르는 리그 경기 종료 직전 갑자기 경기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페헤르는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벤피카 구단은 등 번호 29번을 영구결번했고, 홈구장 한쪽에 흉상을 세워 페헤르를 추모했습니다.

퀸즈 파크 레인저스 No. 31
레이 존스(1988.08.28~2007.08.25)
잉글랜드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으로,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존스는 불과 17살의 나이에 프로 데뷔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프로 무대 데뷔골까지 기록하며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차세대 해결사로 주목받았죠. 하지만 2007년 8월 25일, 존스는 자가용을 몰고 이동하던 도중 버스와 크게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존스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고, 소속팀 QPR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후 펼쳐진 리그 경기에서 모든 선수가 존스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으로 나섰습니다.

RCD 에스파뇰 No. 21 (현재 해제)
다니엘 하르케(1983.01.01~2009.08.08)
스페인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거친 수비 유망주였던 하르케는 RCD 에스파뇰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하르케의 등장 이후 에스파뇰도 전성기를 맞았죠. 2005/06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우승, 2006/07 시즌에는 UEFA 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스페인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하르케는 2009년, 전지 훈련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1년 뒤 그의 친구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2010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고 상의를 탈의했죠. 상의 안에는 "다니 하르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스완지 시티 No. 40
베시안 이드리자이(1987.10.12~2010.05.15)
리버풀 FC 소속의 유망주, 이드리자이는 하부리그의 임대 신분으로 경험을 쌓던 유망주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고, 이드리자이는 고국 오스트리아에 돌아갔다가 독일 무대를 전전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당시 챔피언쉽(2부리그) 소속이던 스완지로 이적하며 다시 영국에 입성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5월, 이드리자이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이후 그의 소속팀 스완지는 사상 첫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성공했고, 지금까지 강등당하지 않고 EPL에 잔류했습니다.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No. 38
딜런 톰바이즈(1994.03.08~2014.04.18)
호주 연령별 국가대표를 거친 스트라이커 톰바이즈는 2011년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고환에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진단이었습니다. 당시 톰바이즈는 머리를 민 채 경기에 출전하며 축구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죠.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운 톰바이즈는 다시 필드 위에 설 수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2014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소속팀 웨스트햄은 "톰바이즈는 사랑스러운 아들, 멋진 오빠, 그리고 웨스트햄의 자랑스러운 선수였다.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 할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VfL 볼프스부르크 No. 19
주니오르 말란다(1994.08.28~2015.01.10)
고국 벨기에의 쥘레 바레헴에서 프로 데뷔한 말란다는 데뷔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보여줍니다. 시즌 종료 후, 일찌감치 말란다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독일의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며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갔죠. 볼프스부르크에서도 로테이션 자원으로 3선의 루이스 구스타부, 조슈아 길라보기와 함께 중원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2014/15 시즌 휴식기 중 말란다는 큰 교통사고로 인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벨기에 국적의 선수들, 볼프스부르크 선수들 모두 크게 슬퍼하며 말란다를 기렸습니다.

칼리아리 칼초 No. 13 / ACF 피오렌티나 No. 13
다비데 아스토리(1987.01.07~2018.03.04)
안드레아 라노키아와 함께 이탈리아의 차세대 중앙 수비수로 각광받은 다비데 아스토리입니다. 성공적으로 1군 무대에 데뷔했던 칼리아리에서 6시즌을 출전하며 주축 수비수로 성장한 아스토리는 AS 로마에서 한 시즌 임대 생활을 거쳐 ACF 피오렌티나에 이적합니다. 팀의 주장직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을 갖췄던 아스토리는 지난 4일, 심장질환으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피오렌티나는 아스토리의 유가족에 재계약을 안겨줬을 뿐 아니라 등 번호 13번을 영구결번하며 예우를 다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은 떠났지만,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떠나간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