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트라이브=최유진 기자] 이번 겨울 이적 시장은 영국 프리미어리그가 벌인 잔치였다. 필리페 쿠티뉴가 비록 스페인 라리가로 이적하며 이적 순위 1위를 지키긴 했지만, 상위권 팀뿐만 아니라 중하위권 팀 모두 골고루 많은 이적료 지출을 냈다. EPL을 제외한 나머지 5대 리그의 이적 금액을 모두 합쳐도 EPL보다 낮다.
EPL은 아시아 시장을 선점한 이래로 중계권료가 매년 폭등하고 있다. 2015/16 시즌 우승했던 레스터 시티는 중계권료로 약 1,435억 원을 받았지만, 2016/17 시즌 꼴찌를 한 선덜랜드가 더 많은 약 1,452억 원을 받았을 정도다. 거의 매년 구단에 분배되는 돈만 1조 원씩 늘어나고 있다. 특히 균등하게 분배되는 배분 구조기 때문에 중하위권 팀도 타 리그 상위 구단에 맞먹는 중계권료를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EPL이 많은 돈을 썼다 혹은 번다 이렇게 단정 짓는 것뿐만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중하위권 팀을 통한 이적료의 순환이다. 중계권료 균등분배 구조인 EPL에서는 유니폼이나 입장권 등의 수익이 적을 수밖에 없는 하위권 팀도 충분히 선수 이적료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에 EPL 상위 팀은 장기적으로 구매자이면서 판매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가령 아스널 FC를 보자. 헨리크 미키타리안과 피에르 오바메양을 영입한 아스널의 전력이 좋아진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아스널 FC의 지출-수입 총계는 고작 약 181억 원을 지출했을 뿐이다. 이는 시오 월컷, 올리비에 지루, 프랑시스 코클랭 등의 불필요한 자원을 이적시키면서 얻어낸 수익이다. 코클랭은 해외로 나갔지만, 월컷, 지루는 리그 내 이동이다. 이미 장단점이 모두 드러난 나이 많은 1986년생 지루, 1989년생인 월컷을 이적시키면서 얻은 금액으로서는 상당하다.
비단 월컷과 지루 경우 뿐이 아니다. 많은 선수들이 EPL을 떠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최근 EPL은 상위권 팀끼리 가장 많은 선수 이동이 있는 리그가 되었다. 페트르 체흐, 알렉시스 산체스, 은골로 캉테 같은 선수들 모두 EPL 외의 리그에서도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본인들이 영국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유벤투스가 압도적인 이탈리아 세리에A,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주도하는 스페인 라리가,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이 독주 중인 프랑스, 독일과는 상황이 다르다. 소수의 구단 외에는 재정적으로 허덕이거나 사용할 수 있는 금액 자체가 없어 규모가 작다. 심지어 EPL은 중계권료 총액 자체가 큰데 그 파이조차 균등분배되고 있다. 이는 무리한 ‘패닉 바이’, 높은 주급으로 EPL이 장기적으로 붕괴할지 모른다는 관점보다, 오히려 합법적으로 리그 내에서 순환하며 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특히 파리의 중동 자본 유입 등으로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2.0의 발효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EPL 팀들은 오히려 손쉽게 유리한 고지를 점할지 모른다. 외부 자본의 참여를 막고 대량의 금액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유리한 건 파이가 큰 EPL이다. EPL 상위 구단이 사용하는 이적료를, 중하위권 구단에 판매해서 메울 수 있다면 성적과 돈이라는 모든 토끼를 EPL이 잡을 수 있다.
아직 EPL이 유럽 무대를 다시 정복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EPL이 가진 커다란 파이는 장기적으로 라리가를 비롯한 다른 리그를 뒤흔들 확률이 높다. 돈이 돈을 부른다는 속설은 비단 축구계에서 예외가 아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