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프리미어 리그

[블랙데이 특집] 꼴도 보기 싫은 놈들 (ft. 맨유)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사람들은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주기 싫을 만큼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 생각하기도 싫은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잦은 부상이나 기대 이하의 모습을 펼쳐 비판받았다. 혹은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해 팬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에 풋볼 트라이브 코리아가 블랙데이를 기념해 ‘블랙데이 특집’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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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팡저우

동팡저우는 2004년 다롄 스더 FC를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했다. 중국 축구 역사상 첫 번째 맨유 선수가 된 동팡저우는 이적하자마자 벨기에 리그의 로열 앤트워프 FC로 임대를 떠났다. 그리고 2006년 복귀했다.

하지만 동팡저우는 맨유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이 중국 선수의 유일한 프리미어 리그 출전 기록은 2006/2007시즌이 마지막이었다.

결국,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맨유를 떠났다.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려 ‘저니맨’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2016년 은퇴했다.

가브리엘 오베르탕

오베르탕은 2009년 맨유로 입단했다. 입단 초기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장기적인 대체자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워낙 기대치가 컸기에 차기 7번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하지만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1군에서 오베르탕이 출전한 경기 숫자는 총 27경기에 그쳤다. 이 프랑스 선수는 대부분 2군 경기에 출전했다.

2011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떠난 오베르탕은 이후 FC 안지 마하치칼라와 위건 애슬래틱 FC에서 뛰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불가리아의 PFC 레프스키 소피아와 계약을 맺었다.

올리베이라 안데르손

안데르손은 2007년 FC 포르투에서 맨유로 이적했다. 맨유는 안데르손이 당시 만 33살로 은퇴를 앞두고 있었던 폴 스콜스의 대체자가 되기를 바랐다.

맨유에서의 첫 시즌은 ‘골든 보이’를 수상했을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성장이 정체됐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은퇴한 지 반년 후 ACF 피오렌티나로 임대를 떠났지만, 그곳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2015년 브라질 리그로 복귀했지만, 현재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에릭 젬바 젬바

젬바 젬바는 2003년 맨유로 이적했다. 당시 로이 킨이 만 31살이었기에 퍼거슨은 젬바 젬바가 킨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젬바 젬바는 프리미어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맨유는 젬바 젬바에게 3시즌 정도 기회를 줬지만, 이 카메룬 출신의 미드필더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결국, 2005년 애스턴 빌라 FC로 떠난 것을 시작으로 저니맨이 됐다. 현재 젬바 젬바는 스위스의 발로르베에서 뛰고 있다.

로랑 블랑

블랑 감독은 선수 시절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다. 특히,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조국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블랑은 2001년 자서전 사건으로 맨유를 떠난 야스 스탐의 대체자로 영입됐다. 당시 선수의 나이는 만 35살로 나이가 많았다. 당연히 템포가 빠른 프리미어 리그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나이를 실감한 이 프랑스 수비수는 2003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블랑은 프랑스 국가대표팀과 파리 생제르맹 FC를 이끌었다. 한때 맨유 차기 감독 후보에 언급되기도 했다. 현재 무직이다.

조란 토시치

토시치는 2009년 FK 파르티잔에서 맨유로 입단했다. 이적 초기만 해도 맨유의 미래를 이끌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토시치는 맨유 1군에서 5경기를 출전하는 데 그쳤고 주로 2군에 출전했다. 이 세르비아 선수는 이적한 지 반년 만에 맨유를 떠나 FC 쾰른로 떠났다.

이후 토시치는 CSKA 모스크바로 팀을 옮겼고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어느덧 만 30살이 된 토시치는 현재 친정 팀 파르티잔에서 뛰고 있다.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베론은 지네딘 지단과 루이스 피구, 데이비드 베컴 등과 함께 ‘4대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다. 이 아르헨티나 선수는 2001년 SS 라치오를 떠나 맨유로 이적했다.

큰 기대를 모았던 베론은 이적 초반에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팀에 겉돌았다. 베론의 부진은 포지션과 전술 문제를 포함해 복합적인 것이었다. 설상가상 부상까지 당해 컨디션 난조까지 빠졌다.

결국, 베론은 2004년 맨유를 떠나 첼시 FC로 이적했다. 그러나 첼시에서도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쳤고 세리에A로 복귀했다.

베베

베베는 2010년 포르투갈의 SC에서 맨유로 깜짝 이적했다. 베베의 이적이 화제가 된 건 무명 선수였던 점도 있지만, 어린 시절 노숙자 보호시설에서 지낸 경험 때문이다.

맨유는 전 수석 코치였던 카를로스 케이로스의 추천을 받아 베베를 영입했다.

그러나 베베는 기본기를 비롯해 여러 부분에서 미숙함을 드러냈다. 결국, 이적한 지 1년 만에 맨유를 떠나 베식타스 JK로 떠났다.

이후 저니맨이 된 베베는 현재 라요 바예카노에서 뛰고 있다.

라다멜 팔카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팔카오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 다음으로 뛰어난 공격수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AS 모나코 시절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다.

부상 변수가 있었지만, 팔카오가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이에 맨유의 지휘봉을 잡은 루이스 판 할 감독은 팔카오를 임대 영입했다. 당시 팔카오가 맨유로부터 받았던 주급은 26만 5,000파운드(한화 약 4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팔카오는 맨유에서 29경기를 출전하며 4득점 5도움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맨유는 이 콜롬비아 공격수를 완전 영입하지 않았다.

앙헬 디 마리아

레알 시절 디 마리아는 구단의 열 번째 챔스 우승에 공헌했다. 하지만 재계약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었고 2014년 맨유로 이적했다.

맨유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 번호 ‘7번’을 받았을 정도로 기대를 모은 디 마리아는 초반에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부진에 빠졌고 부상까지 당했다. 설상가상 집을 비운 사이에 강도가 침입하는 사건까지 터졌다.

결국, 이적한 지 1년 만에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했다. 이후 디 마리아는 “행복과 우승을 위해 맨유를 떠나기로 했다”며 아쉬운 감정을 털어놨다.

오언 하그리브스

하그리브스는 2007년 FC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바이에른으로 이적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있었던 하그리브스는 이적 첫해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이후 잦은 무릎 부상으로 장기 이탈했다. 설상가상 2009/2010시즌에는 리그 1경기만 출전했을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다.

맨유에서 방출된 하그리브스는 2011년 라이벌 팀인 맨체스터 시티 FC와 자유 계약을 맺었다. 맨시티 입단 직후 “나는 맨유에 완전히 기니피그처럼 다뤄졌다”면서 맨유 의료진을 비판했다. 그러나 1시즌 만에 방출됐고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