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좀 더 다양한 역할을 맡은 크로스
2014년에 크로스가 레알로 이적한 이후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특히, 지단 체제에서는 루카 모드리치와 함께 중원에서 거대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로페테기 때도 마찬가지다. 현재 크로스 로페테기 체제에서 라모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선수다.
지단 체제에서도 중원에서의 패스는 한 번씩 크로스를 거쳐 갔다. 그러나 이때는 루카 모드리치의 비중 역시 적잖았다. 지단 체제에서 크로스가 왼쪽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공을 배급하면, 모드리치가 3선과 2선을 넘나들며 공격과 중원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단의 전술은 공간을 압박하면서 공을 점유하고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극대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중원에서 카세미루가 동료들에게 주어진 공간을 배분해서 일차적으로 상대의 압박을 저지한다. 크로스와 모드리치, 카림 벤제마 같은 선수들은 공간을 넓혀가며 동료들에게 안정적으로 공을 배급한다. 공간 창출에 능한 이스코 같은 선수들은 호날두에게 지속해서 공간을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수비 상황에서는 카세미루를 중심으로 크로스와 모드리치, 그리고 이스코가 다이아몬드 형태를 만들어가며 방어했다. 이러한 공간 압박 전술은 레알이 지난 3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차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레알의 전술적 문제점을 상대 팀이 파악했다. 그중에서도 크로스는 기동력이 뛰어나지 않기에 상대가 빠르고 강한 압박을 가하면 종종 공을 흘리거나 패스 미스를 범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까지 크로스는 이러한 신체적 한계를 뛰어난 기술력과 넓은 시야, 높은 축구 지능으로 극복해왔다. 하지만 상대가 레알의 전술과 크로스의 단점을 파악한 지난 시즌부터 그답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크로스의 체력 문제도 고려할 부분이기는 하지만, 선수의 이러한 약점은 로페테기가 반드시 개선해야만 하는 부분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로페테기는 크로스에게 좀 더 넓은 공간과 다양한 역할을 부여했다. 동시에 주변 선수들과의 위치와 간격을 조정했다.
레알의 후방 빌드업을 주도하는 선수는 라모스지만, 이 과정에서 크로스도 함께 움직이며 공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좌우 측면 풀백인 마르셀로와 다니엘 카르바할이나 앞서 있는 미드필더들에게 공을 배급하며 최후방에서부터 조금씩 점유율을 넓힌다.
그러다가 수비진이 중앙선 근처까지 올라오면 크로스는 본래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로 되돌아가며 공격진에 공을 배급한다. 이 과정에서 활동폭이 넓고 탈압박에 능한 이스코나 마르코 아센시오 등이 함께 움직이면서 크로스의 전진을 도운다. 이렇게 되면 중원에서 수적 우위를 점해서 상대의 압박을 좀 더 쉽게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크로스의 최대 강점인 공 배급 역시 좀 더 안정적으로 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장점인 중거리 슈팅 기회도 늘어난다.
실제로 크로스의 볼 터치 횟수나 패스 시도 숫자는 지단 시절보다 늘어났다. 지단 체제에서는 모드리치 역시 많은 공을 잡았기에 크로스가 100회 이상의 패스를 했던 경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로페테기 체제에서는 볼 터치는 물론 패스에서 크로스가 미치는 비중이 늘어났다.
크로스는 지난 헤타페전에서 137회의 볼 터치를 기록했다. 패스 횟수는 총 119회였고 패스 성공률은 무려 98%에 달했다. 공을 소유했던 비중은 11.7%로 이날 선발 출전한 선수 중 가장 높았다. 지로나전에서는 121회의 볼 터치와 107회의 패스, 그리고 96%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공을 소유했던 비중은 10%였다.
레가네스전 볼 터치 횟수는 119회였고 패스 횟수는 107회였으며 95%의 패스 성공률을 자랑했다. 공을 소유하는 비중은 9.6%에 달했다. 로마전에서는 104회의 볼 터치와 8.9% 정도 공을 소유했으며 88회의 패스가 95%의 패스 성공률로 연결됐다. 로마전에서 크로스는 100회 이하의 패스를 기록했지만, 4차례의 위협적인 슈팅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