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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다운 선택을 한 지단, 왜 레알을 떠나야만 했는가

과도기를 맞이할지도 모를 레알

 

지단의 사임으로 레알은 선수단 개편이라는 명분을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지단 시절만큼 성공해야만 한다는 거대한 압박감에 빠졌다.

 

우선 차기 감독 선임부터가 문제다. 현재 레알 후베닐 A의 호세 마리아 구티를 비롯해 토트넘 홋스퍼 FC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독일 국가대표팀의 요아힘 뢰브, 리버풀 FC의 위르겐 클롭 감독 등이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구티가 당장 사령탑에 올라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건 그의 자질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구티가 이끄는 후베닐 A 경기를 많이 봤다. 구티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동시에 본인의 전술 철학이 뚜렷하기에 자신만의 팀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레알의 유소년 선수 출신이었기에 구단의 철학에 대해서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두 가지다. 첫 번째, 1군은 후베닐 A와 달리 신경 써야 할 점들이 많다. 후베닐 A에서는 지금처럼 선수 육성과 감독 자신의 전술적 발전에 집중할 수 있지만, 1군은 신경 써야 할 점들이 너무 많다. 특히, 레알은 최종적인 결과가 중요한 구단이다. 10살부터 구단에 몸담은 구티가 이 점을 모를 리가 없다.

 

무엇보다 레알에는 과거 구티가 뛰었던 갈락티코 1기 시절 때처럼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다. 이들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는 감독 본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나 업적이 뒷받침돼야만 한다. 이런 까닭에 감독으로서 명성을 쌓은 조세 무리뉴와 선수와 감독 경력 모두 좋았던 안첼로티,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지단이 사령탑에 올랐다.

 

하지만 구티는 여러모로 애매한 인물이다. 레알에서 20년 넘게 선수 시절(유소년 선수 기간 포함)을 보냈지만, 확고한 주전이었던 시기는 손꼽을 정도로 적다. 지네딘 지단이나 데이비드 베컴처럼 전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선수 경력이 미미했던 무리뉴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처럼 감독 경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후베닐 A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프로 선수들을 이끌 수 있는 업적이 미약하다.

 

이 때문에 구티가 1군을 이끌어도 조금만 성적이 나지 않으면 선수단과 갈등을 빚거나 스페인 언론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구티가 안정적인 1군 감독직을 보내려면 경영진과 선수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확실한 결과물이 있어야만 한다.

 

두 번째, 당장 지단의 뒤를 잇는 것은 독이 든 성배를 쥔 것이나 다름없다. 구티는 얼마 전 인터뷰에서 “지단은 훌륭한 인물이다. 우리는 지단이 최근 몇 년 동안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평가해야 한다”며 당장 자신에게 1군 감독으로 부임할 기회가 오지 않기를 빌었다.

 

구티가 이 말을 했던 이유는 지단을 지지하는 목적도 있지만, 당장 그 뒤를 잇고 싶지 않은 뜻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감독 경력 내내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통성만 놓고 본다면, 레알 유소년 선수 출신인 구티는 라울 곤잘레스나 이케르 카시야스처럼 성골에 가까운 인물이다. 지단은 나쁘게 말하면 ‘이방인’이다.

 

그러나 레알은 성적이 우선시되는 구단이다. 지단은 선수 시절 구단의 아홉 번째 챔스 우승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대회 3연패를 차지해 엄청난 영향력을 얻게 됐다.

 

레알 팬들이라면, 구단의 열 번째 챔스 우승을 이끌었던 안첼로티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이후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기억할 것이다. 베니테즈 감독은 부진에 빠지면 매번 안첼로티 감독과 비교됐다.

 

반면, 지단은 안첼로티의 그림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선수 본인이 구단의 전설인 이유도 있지만, 전임자인 베니테즈 감독이 모든 비판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지단의 비교 대상은 늘 베니테즈였지 안첼로티나 무리뉴가 아니었다.

 

이런 비교를 받았던 인물은 베니테즈뿐만이 아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부임했던 데이비드 모예스와 루이스 판 할, 무리뉴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맨유 팬들은 툭하면 “퍼거슨 시절 때는 이렇지 않았다”면서 예전을 그리워한다.

 

구티가 곧바로 지단의 뒤를 이으면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구티가 일시적인 부진에 빠져도 스페인 언론이나 팬들, 경영진은 지단과 그를 자주 비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지단이 쌓아놓은 업적이 워낙 거대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장 지단의 뒤를 잇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지금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자신만의 팀을 만들 준비를 해야 할 시기다.

 

이는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포체티노와 뢰브 등 차기 감독 후보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전임자의 빛이 워낙 컸다. 누가 오든 당장은 ‘지네딘 지단’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질 수밖에 없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역시나 선수단 개편이다. 지단의 사임으로 레알을 떠날 가능성이 높아진 선수들이 많아졌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 카세미루, 그리고 케일러 나바스의 입지가 위험해졌다고 생각한다. 이 네 명은 지난 3년 동안 꾸준하게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비판받았다. 특히, 호날두와 벤제마, 나바스는 서른을 넘었기에 레알에서의 시간이 길지 않을 듯하다.

 

또한, 지단의 사임으로 인해 레알은 지금과 같은 로테이션 운영이 어려워질 듯하다. 그동안 선수단이 지단의 로테이션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었음에도 버텼던 이유는 지단의 선수단 장악 능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단의 사임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로테이션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듯하다.

 

그만큼 구단을 떠날 선수들이 많아질 레알다. 페레즈가 워낙 유능한 인물이고 수많은 위기를 극복했기에 지금의 문제점을 타개하리라 보지만, 지단의 공백은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로스 블랑코스다.

 

지단의 사임은 단순히 한 사람의 사임이 아니다. 이전 시대의 종언 선언이나 다름없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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