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시니사 미하일로비치
강력한 킥과 뛰어난 프리킥으로 정평이 난 선수. 워낙 뛰어난 프리킥을 자랑했기에 데이비드 베컴과 호베르투 카를루스 등과 함께 세계적인 프리키커로 반드시 거론되는 선수다.
크로아티아 태생이지만, 아버지가 세르비아인이다. 세르비아 최고의 명문 구단인 1990년 즈베즈다에서 선수 생활을 보낸 미하일로비치는 그해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빅 이어를 차지했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발발하자 세리에A의 AS 로마로 이적했다. 로마에서 꾸준하게 출전한 이 세르비아 수비수는 이후 UC 삼프도리아와 SS 라치오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그리고 세리에A 최고의 명문 구단인 FC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지만,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2006년에 인테르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대표팀에서 A매치 통산 63경기에 출전해 9득점을 기록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으나, 내전으로 인한 출전 금지로 많은 메이저 대회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 본선 무대를 밟았다. 두 대회 모두 조별 리그를 통과했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각각 16강과 8강에서 모두 네덜란드에 졌다.
선수 시절 성격이 매우 좋지 않았다. 파트리크 비에라를 상대로 인종 차별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크로아티아계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상대로도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랬는데도 즐라탄과 사이가 좋았다. 즐라탄이 자신이 뛰어난 프리킥을 찰 수 있는 이유는 미하일로비치의 지도 덕분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다혈질적인 성격이라 경기 중 욕설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감독을 맡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지만, 지도자의 길을 걸어간 이후에는 성격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2008년 볼로냐 FC 1909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칼치오 카타니아와 ACF 피오렌티나, 삼프도리아, AC 밀란, 토리노 FC 감독을 맡았다. 2012년에는 세르비아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