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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혹은 인연, 레알과 리버풀에서 뛴 선수들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다가오고 있다. 챔스에서 각각 통산 12회와 5회 우승을 차지한 두 팀은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80/1981시즌 유러피인 컵 (현 챔스) 결승전이다. 이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리버풀은 레알에 마지막 결승전 패배를 안겨준 팀이 됐다.

그렇다면 두 팀에서 뛰었던 선수는 누가 있을까. 그리고 이들은 좋은 활약을 펼쳤을까.

스티브 맥마나만

맥마나만은 리버풀 유소년 선수 출신으로 1990년에 데뷔했다. 리버풀에서 9년을 뛴 이 잉글랜드 미드필더는 1999년 로스 블랑코스 군단의 일원이 됐다.

맥마나만은 레알로 이적한 첫 시즌에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는 득점까지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갈락티코 정책에 의해 루이스 피구와 지네딘 지단 같은 선수들이 영입되면서 맥마나만의 입지는 한없이 좁아졌다. 그러나 이 잉글랜드 선수는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레알의 리그와 챔스 우승에 공헌했다. 오늘날 맥마나만은 해외에 진출한 잉글랜드 선수 중 가장 성공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니콜라 아넬카

아넬카는 1999년 아스널 FC를 떠나 레알로 이적했다. 당시 이 프랑스 선수는 아스널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기에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레알에서의 시간은 행복하지 못했다. 아넬카는 라울 곤잘레스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과 충돌했다. 결국, 이적한 지 1년 만에 레알을 떠나 친정 팀 파리 생제르맹 FC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2001년 리버풀로 임대를 떠났다. 하지만 완전 이적에 실패했고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참고로 아넬카가 떠나고 난 이후 리버풀에 온 선수는 구단 역사상 최악의 영입에 이름을 자주 올리는 엘 하지 디우프다. 이후 아넬카는 맨체스터 시티 FC와 볼턴 원더러스, 첼시 FC 등 다양한 팀에서 뛰었다.

마이클 오언

오언은 리버풀의 유소년 선수였다. 1996년에 1군 무대를 밟은 이 잉글랜드 공격수는 1997년부터 두 시즌 연속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1998년에는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쳐 최우수 신인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2001년에는 라울과 올리버 칸을 제치고 발롱도르의 주인이 됐다.

이처럼 오언은 선수 개인으로써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소속 팀 리버풀은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우승을 원했던 이 잉글랜드 공격수는 2004년에 리버풀을 떠나 레알로 이적했다. 하지만 라울과 호나우두와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또한, 친정 팀 리버풀은 해당 시즌 챔스 우승을 차지했으나, 레알은 유벤투스 FC에 패해 16강에서 탈락했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모리엔테스는 1997년 레알에 입단했다. 이 스페인 공격수는 라울과 함께 환상의 호흡을 펼쳤다. 그러나 2002년 호나우두가 입단하자 입지가 좁아졌다. 결국,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2003년 AS 모나코로 임대를 떠났다. 공교롭게도 모나코는 챔스 8강에서 레알을 만났다. 모리엔테스는 친정 팀을 상대로 두 골을 넣으며 레알을 탈락시켰다.

이후 리버풀로 이적했지만, 전성기가 끝났기에 과거만큼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결국, 리버풀에 합류한 지 두 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은퇴 후 레알의 유소년 팀 감독을 맡기도 한 모리엔테스는 현재 라 리가의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다.

예지 두덱

2001년부터 리버풀에서 뛴 두덱은 2004/2005시즌 때 팀의 챔스 우승을 이끌었다. 이 폴란드 골키퍼는 AC 밀란과의 결승전에서 전반전에 무려 3실점을 허용했지만, 승부차기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나 이후 페페 레이나와의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면서 2007년 레알에 입단했다.

하지만 당시 레알의 주전 골키퍼인 이케르 카시야스가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기에 두덱은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카시야스의 야성을 넘지 못한 두덱은 2009/2010시즌 코파 델 레이에서 3부 리그 팀인 알코르콘에 무려 4실점을 허용하는 굴욕을 경험했다. 결국, 2011년 레알을 떠났다.

알바로 아르벨로아

레알의 유소년 선수 출신이었던 아르벨로아는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레알을 떠나 데프로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했다. 그리고 2007년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에 의해 리버풀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지만, 이후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줬다. 단, 공격력이 매우 떨어지는 풀백이었다.

2009년 친정 팀으로 복귀한 아르벨로아는 당시 수비력이 떨어졌던 마르셀로를 대신해 왼쪽 풀백에서 뛰기도 했다. 그러다 2011년부터 주 포지션인 오른쪽 풀백으로 뛰었다. 그러나 공격력이 매우 좋지 않은 풀백이었기에 늘 레알의 약점으로 지적됐다. 결국, 2013년 다니엘 카르바할이 합류하자 주전에서 밀렸고 2016년에 떠났다. 은퇴 이후 레알의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다.

사비 알론소

알론소는 아버지 페리코 알론소처럼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 라 레알의 유소년 선수였던 이 스페인 미드필더는 2004년 리버풀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적 첫해 본인의 첫 번째 챔스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와 함께 리버풀의 중원을 책임졌다. 그러나 2009년 절친한 친구인 아르벨로아를 따라 레알로 이적했다.

알론소가 떠난 이후 리버풀은 무너졌다. 반면, 레알은 알론소의 합류로 탄탄한 중원을 갖췄다. 이 스페인 미드필더는 레알의 전성기를 이끄는 데 공헌했다. 하지만 2013/2014시즌 이후 입지가 좁아지자 레알을 떠나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팀을 옮겼다. 공교롭게도 그의 마지막 챔스 상대는 레알이었다.

누리 사힌

사힌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촉망받는 선수였다. 2010/2011시즌에 분데스리가 최우수 선수상을 차지한 이 터키 미드필더는 2011년에 레알로 이적했다. 그러나 도르트문트 시절 당한 부상이 장기화되면서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다. 결국, 알론소와 사미 케디라, 에스테반 그라네로 등에 밀렸다. 설상가상 이듬해 루카 모드리치까지 합류하면서 설 자리가 없어졌다.

2012년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리버풀로 임대를 떠났지만,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결국, 2013년 1월에 도르트문트로 복귀했다. 이후 이 터키 선수는 단 한 번도 도르트문트를 떠나지 않았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