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➁미셸 플라티니
코파 이후 프랑스 축구계는 방황했다. 많은 선수가 등장했지만, 그 누구도 코파와 퐁텐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1972년, 프랑스 축구계에 혜성 같은 인물이 등장했다. 그 이름은 바로 플라티니다.
AS 낭시에서 1군에 데뷔한 플라티니는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리그 앙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참가한 플라티니는 이 대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1982년 유벤투스 FC로 이적했다.
유벤투스에 입단한 플라티니는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또한, 1984/1985시즌에 리버풀 FC를 꺾고 구단에 첫 번째 유러피언 컵 우승을 안겨줬다. 무엇보다 플라티니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그의 등 번호 10번은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로 성장했다.
특히, 플라티니는 1984년에 뢰블레 군단을 이끌고 조국의 첫 번째 유럽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다. 이 대회에서 플라티니는 5경기 동안 무려 9득점을 넣었다. 프랑스 역시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유독 월드컵 우승과 인연이 멀었다. 프랑스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과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모두 4강에 진출했지만, 두 차례 모두 서독에 막혀 우승을 놓쳤다.
프랑스와 유벤투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플라티니는 1987년 32살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UEFA 회장까지 지냈지만, 2015년 비리 문제가 밝혀지면서 제프 블레터 FIFA 회장과 함께 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