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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보감: 프랑스] “나폴레옹도 모스크바는 점령했지” ➁역대 스타

레몽 코파

 

국내에서는 프랑스 축구의 첫 번째 전성기를 연 선수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13득점을 기록한 쥐스트 퐁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뢰블레 군단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이끌었던 인물은 퐁텐이 아닌 코파다.

 

폴란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코파는 어린 시절부터 광산 일을 했다. 그러나 이때 사고로 한쪽 손가락을 절단해야만 했다. 또한, 겨우겨우 삶을 유지했을 만큼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영양 불균형 문제에 시달렸다. 스무 살이 됐을 때 코파의 신장은 169cm에 불과했다. 당시 축구계는 키를 중시하는 성향이 있었기에 많은 프랑스 클럽들이 그와 계약을 맺는 데 관심이 없었다.

 

가까스로 앙제 SCO에 입단한 코파는 이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 프랑스 선수는 공을 다루는 기술이 훌륭한 드리블러였다. 무엇보다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사람들은 코파의 플레이에 환호했다. 이 프랑스 선수는 ‘작은 나폴레옹’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얼마 후 스타드 드 랭스에 입단한 코파는 1954/1955시즌에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듬해 유러피언 컵에 출전해 결승전 진출을 이끌었다. 상대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프란시스코 헨토, 엑토르 리알, 미겔 무뇨스, 호세 마리아 사라가 등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으로 팀을 구성한 레알 마드리드였다. 이날 코파는 뛰어난 경기를 펼쳤지만, 팀은 3:4로 패했다.

 

코파는 시즌 직후 레알로 이적했다. 당시 팀에는 코파와 비슷한 성향의 선수인 헨토가 버티고 있었다. 코파는 헨토와 공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프랑스 선수가 팀에 적응하자 레알은 매서운 기세를 펼쳤다. 로스 블랑코스는 2시즌 연속 리그와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했다. 코파는 유러피언 컵 3회 연속 우승을 경험했다.

 

코파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프랑스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코파뿐만 아니라 퐁텐과 로제르 피앵토니, 마르얀 위스니스키 등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한 까닭이었다.

 

유고슬라비아와 파라과이, 스코틀랜드와 같은 조가 된 프랑스는 2승 1패를 기록하며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북아일랜드를 4:0으로 꺾었다. 그러나 4강에서 펠레의 브라질에 2:5로 패해 탈락했다.

 

비록 월드컵 우승을 놓쳤지만, 코파는 1958년에 역대 세 번째 발롱도르 수상자가 됐다. 이는 프랑스 축구 선수 역사상 최초다. 그만큼 코파는 뛰어난 선수였다. 무엇보다 이 프랑스 선수가 노쇠하자 프랑스 축구의 첫 번째 전성기도 함께 끝났다.

 

또한, 코파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레알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 번호 ‘7번’의 주인이기도 했다. 레알의 에이스가 7번이라는 상징성을 확립한 인물은 아마로 아만시오였지만, 코파는 등 번호 7번의 상징성의 주춧돌을 다져놓은 선수다.

 

코파는 2017년 3월 3일, 프랑스 앙제에서 85세의 나이로 여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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