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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특집] 스승의 은혜 못잖게 큰 감독의 은혜: 레알 편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스승의 날’은 사람들이 은사를 기리는 날이다. 이날 많은 사람이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을 방문해 인사를 드리거나, 학창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축구도 마찬가지. ‘감독의 날’은 없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감독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떤 감독들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을까. 현재 팀을 맡은 감독 이외에 구단의 위상을 높인 감독들을 살펴보자.

호세 비야롱가

비야롱가는 1954/1955시즌 중반에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엔리케 페르난데스 감독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았다. 비야롱가는 팀을 잘 추슬렀고 팀의 리그 2연패를 이끌었다.

이듬해 레알은 스페인의 챔피언 자격으로 제1회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했다. 4강에서 AC 밀란을 격파한 레알은 결승전에서 스타드 렌을 4:3으로 꺾으며 대회 역사상 첫 번째 우승자가 됐다. 레알은 이듬해도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했다. 동시에 리그 우승도 거머쥐며 ‘더블’을 달성했다.

이후 레알을 떠난 비야롱가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1962년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비야롱가는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 컵과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현 유럽 챔피언십) 우승을 거머쥔 감독이기도 하다. 스페인 대표팀 감독이었던 비야롱가는 1964년, 조국에 첫 번째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 우승을 안겨줬다.

비야롱가는 1972년, 심근경색으로 5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미겔 무뇨스

1948년 레알에 입단한 무뇨스는 1958년 선수 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선수로 뛰었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레알의 주장을 맡았던 무뇨스는 레알의 유러피언 컵 3연패에 공헌했다.

은퇴 이후 무뇨스는 레알의 감독 대행직을 맡았다. 그리고 1959/1960시즌에 다시 돌아와서 유러피언 컵 5연패를 이끌었다.

이 우승으로 무뇨스는 선수와 감독으로 유러피언 컵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1960년대 접어들자 레알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페렌츠 푸스카스 같은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로 고민에 빠졌다. 무뇨스는 아마로 아만시오와 이그나시오 조코, 마누엘 산치스 같은 스페인 선수들만으로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그리고 1965/1966시즌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했다.

유러피언 컵 역사상 자국 선수들만으로 구성된 팀이 우승한 사례는 SL 벤피카와 레알, 셀틱 FC,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뿐이다.

레알 감독으로 14년을 역임한 무뇨스는 구단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팀을 이끈 인물로 기록됐다.

레오 베인하커르

베인하커르는 1986년 레알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레알은 리그에서 레알 소시에다드와 아틀레틱 빌바오 같은 바스크 지방 클럽들에 밀리고 있었다. 1985/1986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마놀로 산치스 등 너무 어린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이었기에 꾸준한 성적을 장담하지 못했다.

1986/1987시즌부터 레알 감독직을 맡은 베인하커르는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1988/1989시즌에는 34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했다.

이후 베인하커르는 레알을 떠나 네덜란드 무대로 돌아왔다. 1991/1992시즌 도중 레알 감독직에 복귀했지만, FC 바르셀로나에 밀려 우승을 놓치자 경질됐다.

레알을 떠난 이후 베인하커르는 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를 떠돌았지만, 레알 시절만큼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2009년 폴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베인하커르는 감독직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스파르타 로테르담의 기술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유프 하인케스

하인케스는 1997년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대신해 레알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레알은 유러피언 컵 통산 6회 우승을 경험한 팀이었지만, 1965/1966시즌 이후 31년 넘게 우승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때 레알은 재정적으로 어려운 구단이었기에 구단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챔스에서 우승해야만 했다.

이 독일인 감독은 30년 동안 레알에서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목표를 이루어야만 했다.

하인케스의 레알은 리그에서 루이스 판 할 감독이 이끄는 FC 바르셀로나에 밀려 고전했다.

그러나 챔스에서는 유독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레알은 포르투와 바이엘 04 레버쿠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FC 바이에른 뮌헨 같은 강팀들을 격파하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당시 최강의 팀이었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유벤투스 FC였다. 레알은 유벤투스를 꺾고 32년 만에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하인케스는 경질됐다.

비록 경질됐지만, 하인케스는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레알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렸다. 하인케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레알은 없었을 테다.

비센테 델 보스케

델 보스케는 선수 시절 레알에서 총 13년을 뛰었다. 1984년에 레알에서 은퇴한 델 보스케는 이후 레알의 유소년 팀 코치를 맡은 걸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이 스페인 감독은 과거 무뇨스가 그랬듯이 종종 레알의 감독 대행직을 맡았다. 그리고 1999/2000시즌 도중 경질된 존 토샥 감독을 대신해 레알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레알은 리그 8위에 위치했을 정도로 부진했다. 델 보스케는 당시 회장이었던 로렌조 산즈가 던진 최후의 카드였다.

레알은 델 보스케 체제에서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시즌 초반에 너무 많은 승점을 잃었기에 리그 우승은 어려웠지만, 대신 챔스에서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레알은 챔스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비롯해 바이에른과 발렌시아 CF 등을 꺾고 우승했다.

이후 델 보스케는 ‘갈락티코 군단’을 이끌고 레알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델 보스케 시절의 레알은 구단 역사상 가장 막강한 팀 중 하나로 꼽힌다.

카를로 안첼로티

2010년부터 레알의 지휘봉을 잡은 조세 무리뉴 감독은 구단을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놨지만, 동시에 레알의 명예를 훼손했다. 이 포르투갈 감독은 경기장 안팎에서 무례한 언행을 범해 언론의 비판을 받았고 결국 선수단과 충돌했다.

무리뉴에 지친 레알은 2013년에 그를 경질했다. 대신 선임한 인물은 AC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안첼로티였다. 안첼로티는 무리뉴가 달성하지 못한 열 번째 챔스 우승을 차지해야만 한다는 임무를 받았다.

시즌 초반에 안첼로티의 레알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경기를 거듭할수록 리그와 챔스 무대에서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밀려 리그 우승에 실패했지만, 챔스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바이에른을 종합 0:5로 격파하며 12년 만에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아틀레티코를 만난 레알은 4:1로 대역전승을 거두며 열 번째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안첼로티의 레알은 그다음 시즌에 22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무관으로 그쳐 경질됐지만, 안첼로티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레알의 위상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마르카, 아스, FIFA 공식 홈페이지, 파운데이션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