➁실패했던 정책들, 그러나 장점을 확보하다
한국에서의 인식과 달리 레알은 역사적으로 가장 유소년 선수들을 잘 썼던 팀이다. 1960년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은 자국 선수들만 기용하는 ‘예예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비센테 델 보스케와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같은 유소년 선수들이 1군에 자리 잡았다.
1980년대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감독에 의해 다시 한번 유소년 선수 육성에 관심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첸도와 마놀로 산치스,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미첼 곤잘레스 같은 유소년 선수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중심이 된 레알은 1980년대 후반에 리그 5연패를 달성했다.
1990년대는 라울 곤잘레스와 호세 마리아 구티, 이케르 카시야스 같은 유소년 선수들이 등장했다. 특히, 라울과 카시야스는 챔스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구단의 우승에 공헌했다.
2000년에 레알 회장이 된 플로렌티노 페레즈는 지네딘 지단과 루이스 피구 같은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갈락티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페레즈 회장은 과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과 같은 길을 걷고 싶었기에 갈락티코 정책을 시행하면서도 어떻게든 유소년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다.
또한, 스타 선수들의 연봉이 높았기에 짜임새 있는 선수단을 유지하려면 상대적으로 몸값이 저렴한 유소년 선수들을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오늘날 잘 알려진 ‘지다네스 파보네스 정책’이다.
그러나 지다네스 파보네스 정책은 실패했다. 그리고 2006년 페레즈가 사임하면서 사실상 폐지됐다.
하지만 2008/2009시즌에 라이벌 FC 바르셀로나가 거대한 성공을 거두자 페레즈가 복귀했다. 페레즈는 갈락티코 정책을 고수하는가 하면, 알바로 아르벨로아와 에스테반 그라네로 같은 유소년 선수 출신 등을 대거 영입했다. 그리고 과거 실패했던 지다네스 파보네스 대대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레알은 선수의 임대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유망주들에게 레알의 선수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코파 델 레이 같은 컵 대회뿐만 아니라 리그 막바지에 유소년 선수들을 기용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뛰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레알의 선수로 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느끼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이들 중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은 1군에 합류시키거나 임대를 보내 경험을 쌓게 했다. 임대를 떠난 선수들에게는 ‘구단이 너의 활약을 주시하고 있고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그 결과 구단을 떠난 선수들은 ‘반드시 레알에서 성공하겠다’는 강한 동기부여를 가지고 성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로 다니엘 카르바할과 마르코 아센시오, 마르코스 요렌테, 헤수스 바예호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즉, 레알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어떻게 해야 유망주를 육성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깨달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