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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보감: 우루과이] “수아레스, 이빨은 넣어둬” ➂역대 월드컵 성적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우승

 우루과이는 1930년에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했다. 당시 우루과이 대표 팀은 1924년과 1928년 올림픽에서 2연패를 차지했을 정도로 강팀이었다.

루마니아와 페루 등과 같은 조가 된 우루과이는 두 팀을 모두 꺾고 4강에 진출했다. (당시 대회에 참가한 국가는 총 13국가에 불과했고 조 1위만이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6:1로 대파해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4:2로 격파한 우루과이는 최초의 월드컵 우승 국가가 됐다.

여담으로 당시에는 지금처럼 공인구가 없었기에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서로 자신들의 공을 써야 한다고 싸웠다. 결국, 전반전에 아르헨티나의 공을, 후반전에 우루과이의 공을 쓰기로 결정했다.

공교롭게도 아르헨티나의 공을 썼던 전반전에서 아르헨티나가 2:1로 앞섰지만, 우루과이의 공을 쓴 후반전에 우루과이가 무려 3골을 넣어 경기를 뒤집었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

20년 만에 월드컵에 참가한 우루과이는 볼리비아와 프랑스 등과 함께 같은 조가 됐다. 그러나 프랑스가 기권하자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조별 리그에서 단판전을 치러야만 했다. 우루과이는 볼리비아를 8:0으로 격파해 결승 리그에 진출했다.

결승 리그에서 우루과이는 스페인에 2:2 무승부를, 스웨덴에 3:2로 승리했다. 당시 개최국이었던 브라질은 스웨덴을 7:1로, 스페인을 6:1로 격파했다. 최종전에서 브라질이 비기기만 해도 우승은 브라질의 것이었다.

브라질이 워낙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브라질 국민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조국의 우승을 점쳤다. 심지어 FIFA 관계자들마저 브라질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선제 골을 넣으며 우승에 근접했다.

그러나 우루과이의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가 동점 골을 넣었고 알시데스 기지아가 역전 골을 성공시키며 조국에 20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안겨줬다. (마라카낭의 비극)

 

1954년 스위스 월드컵: 4강 진출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한 우루과이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 스코틀랜드 등과 같은 조가 됐다. 우루과이는 체코슬로바키아를 2:0으로 꺾은 데 이어 스코틀랜드를 7:0으로 격파하며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잉글랜드를 4:2로 격파했지만, 4강에서 당대 최강팀인 ‘매직 마자르’ 헝가리를 만들었다. 경기는 연장전까지 이어졌지만, 우루과이의 2:4 패배로 끝났다. 이 대회는 스키아피노의 마지막 월드컵이었다.

 

1962년 칠레 월드컵: 조별 리그 탈락

우루과이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콜롬비아 등과 같은 조가 됐다. 그러나 우루과이는 유고슬라비아와 소련에 패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진출

우루과이는 개최국 잉글랜드와 멕시코, 프랑스 등과 같은 조가 됐다. 잉글랜드와 멕시코에 무승부를 거둔 우루과이는 프랑스를 격파하고 8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서독에 4:0으로 패해 탈락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4강 진출

우루과이는 이탈리아와 스웨덴, 이스라엘 등과 한 조가 됐다. 이스라엘을 2:0으로 꺾은 우루과이는 스웨덴에 패했지만, 이탈리아한테 무승부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소련을 만난 우루과이는 연장전 종료 직전 결승 골을 넣으며 가까스로 4강에 진입했다. 하지만 펠레의 브라질한테 1:3으로 패했다.

여담으로 펠레의 아버지는 1950년 마라카낭의 비극 이후 눈물을 흘렸는데, 이를 본 펠레는 반드시 브라질을 월드컵에서 우승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펠레는 1958년과 1962년, 1970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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