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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 그 남자: 머리로 받아들여도 가슴으로는 못 받아들일 이적

[풋볼 트라이브=서정호 기자]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해할 수 있지만, 감성적으로 접근했을 때 이해하지 못 하는 일들이 세상에 종종 있다. 이번 K리그 겨울 이적 시장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적으로 남게 될 데얀의 수원 삼성 이적도 대다수 FC서울 팬들에게 이런 감정으로 남을 것이다.

 

데얀은 K리그 ‘레전드’ 공격수이자 서울의 상징이다. K리그에서 9시즌을 뛰며 303경기 173골 41도움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K리그 최다 득점자인 이동국을 이어 K리그 통산 2위 득점 기록이다. 이 과정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인 3년 연속 득점왕을 달성했다. 또한, 4년 연속 시즌 베스트11에도 선정됐다. 2017시즌에도 19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에 오르는 등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는 기량을 자랑했다.

 

서울은 데얀과 함께 전성기를 누렸다. 2008년부터 서울에서 뛴 데얀은 2010년, 2012년, 2016년 서울의 K리그 우승과 2013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만들어진 서울의 역사에서 데얀을 빼놓고 설명하긴 어렵다. 데얀은 서울에서만 267경기 154골 38도움을 올리며 팀 역사상 최다 득점자로 남아있다.

 

2016년 중국에서 서울로 복귀할 때 연봉을 반으로 줄이면서 복귀했고 “Champion Like Always”를 외쳤다. 데얀이 말한 문구는 서울의 상징이 됐다. 또한, 데얀은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온 팬들의 다수는 데얀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다.

 

그뿐만 아니다. 전광판에서 데얀의 이름이 나올 때 팬들의 함성은 가장 컸다. 데얀이 골을 넣으면 응원콜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데얀도 팬들의 성원과 기대를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데얀은 슈퍼매치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외국인이었다. 슈퍼매치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슈퍼매치는 자존심 싸움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팬들을 즐겁게 만들고 싶다”며 타도 수원에 앞장섰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이를 증명했다. 슈퍼매치에서 통산 7골을 기록하며 슈퍼매치 최다 득점자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새겼다. 2017시즌 말, 서울이 부진에 빠져있자 경기 후 인터뷰에서 “FC서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는 것 같다”며 선수들에게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랬던 데얀이 “수원 화이팅”을 외치며 수원의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 서울과 수원 팬들뿐만 아니라 K리그 팬들 모두에게 충격으로 남을 이적이다. 만약 12월 중순에 입대한 K리그 팬이 이 소식을 훈련소에서 편지로 접한다면 거짓말하지 말라는 답장을 쓸 것이다.

 

2017시즌을 앞두고 수원 출신 이상호가 서울로 이적할 때도 엄청난 파급이 일어났다. 이상호는 수원에서 7시즌을 뛰었다. 수원 시절 자신의 SNS에 서울을 비난하는 게시글을 많이 올리며 수원 팬들에겐 칭송을, 서울 팬들에겐 비난을 받았다. 수원 팬들에게 사랑받던 ‘블루소닉’ 이상호는 2016년 말, 서울로 전격 이적하며 ‘레드소닉’이 됐다. 이적 초반 서울 팬들에게 비판도 받았지만, 2017시즌 서울에 헌신하며 비판을 칭찬으로 돌려놨다. 슈퍼매치 때 친정팀 수원에 인사하러 갔지만, 수원 팬들은 물병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데얀의 이적은 이상호보다 더 강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데얀의 수원 입단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서울은 2017시즌을 끝으로 리빌딩을 위해 데얀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고 은퇴식을 치러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데얀은 선수 생활을 이어가길 원했다. 데얀은 해외리그와 다른 팀을 알아봤지만, 자녀의 교육 문제로 수도권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조나탄의 공백을 메울 수원과 접촉을 했고, 서로 이해가 맞아지자 라이벌 팀인 수원으로 이적을 택했다. 더불어 지난 시즌 중반부터 흘러나왔던 황선홍 감독과의 불화도 중요한 이유였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이야기다. 데얀은 늘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왔다. 서울에서 중국으로 떠날 때도 가족을 위해 돈을 벌겠다는 이유로 이적을 택했다. 그리고 서울로 복귀할 때도 가족들이 한국 생활을 원한다는 이유로 복귀했다. 또 수원으로 떠날 때도 가족 문제로 수도권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데얀의 결정에는 그를 가족만큼 사랑하고 아꼈던 팬들이 없다. 데얀은 2012년 서울이 자신에게 들어온 거액의 이적 제안을 거절하자 태업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자신을 믿어준 구단과 팬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행동이다. 곧장 사과하며 태업 논란을 진화시켰지만 이미 팬들은 상처받은 후였다.

 

하지만 성원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 시즌 후반기 9경기 연속 무득점을 할 때도 묵묵히 응원했다. 감독과 불화가 터졌을 때도 감독보다 데얀을 옹호했고, 데얀이 경기장에 나올 때 그 어떤 선수들보다 뜨거운 환호를 보내며 데얀을 지지했다.

 

데얀은 이런 팬들을 등지고 꼭 수원으로 가야만 했을까? 만약 데얀이 수원이 아닌 울산, 제주로 떠났다면 팬들도 박수치며 응원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적 과정에서 데얀이 먼저 수원에 접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를 응원한 서울 팬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데얀과 접촉했던 울산과 제주도 수도권보다 좋지 못할지라도 교육 여건이 나쁘지 않다.

 

이적 자체는 받아들일 수 있다. 구단과 이해가 맞지 않았고 선수 본인의 미래가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퍼매치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서울의 심장이자 자존심이었던 데얀이 스스로 수원 입단을 타진, 계약을 맺은 사실은 서울 팬들이 가슴 속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데얀은 약 10년간 서울에서 쌓아왔던 자신의 명성을 단 한 순간의 결정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수원 팬들은 상대의 레전드를 영입한 기쁨에 한껏 도취해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수원 팬들은 K리그의 그 어떤 팬들보다 뜨거운 응원을 보내지만, 그 어떤 팬들보다 차가운 비난도 아끼지 않는다. 2017시즌 수원의 ‘레전드’ 이정수는 팬들의 비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게다가 데얀은 서울에서 전설적인 업적을 쌓은 선수다. 수원에서 조금만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수원 팬들은 가차 없이 그에게 비난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데얀이 대체할 선수는 수원 팬들에게 염기훈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2017시즌 득점왕 조나탄이다. 베테랑 공격수 데얀에게 쉽지 않은 과제다. 게다가 데얀은 2017시즌 후반기 급격히 힘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을 실망하게 했다. 데얀이 한국 나이로 38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도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번 데얀의 이적은 FC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루이스 피구와 도르트문트에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마리오 괴체를 연상시킨다. 바르셀로나 주장이자 에이스로 사랑받던 피구는 레알로 이적했고, 피구는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돼지머리 투척을 비롯한 각종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레알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레알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괴체는 도르트문트에서 뮌헨으로 이적한 후 경기력 난조와 부상에 시달리며 초라하게 복귀했다.

 

데얀은 수원에서 피구의 레알 시절처럼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명성을 유지할까, 아니면 괴체의 뮌헨 시절처럼 불만족스러운 시기를 보내게 될까? 2018시즌 K리그 역사에 남을 또 하나의 이야기가 추가됐다.

 

[사진 출처=FC서울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