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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베를루스코니가 남은 용홍리보다 낫다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지난여름 밀란 팬들은 달콤한 꿈을 꿨다. 베를루스코니가 물러났고 새로운 구단주인 용홍리가 이적 시장 때 2억 유로가 넘는 자본을 투자해 좋은 선수들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단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거라 믿었으며, 용홍리가 베를루스코니보다 더 나은 인물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로쏘네리의 팬들은 비극적인 소식들을 접하고 있다. 밀란의 성적뿐만 아니라 용홍리에 대해 좋지 않은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기 때문. 그럼에도 이들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미국의 ‘뉴욕 타임스’가 이례적으로 용홍리와 밀란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면서 남아있던 희망은 한 줌의 재가 됐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 언론이기에 축구보다 뉴욕 시민들이 즐겨 보는 MLB와 NBA, NFL을 중심으로 다룬다. 축구는 그들의 관심 밖 스포츠다. 이런 곳에서 용홍리와 밀란의 소식을 보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이곳이 전 세계에 가장 권위 있는 신문사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보도를 접한 밀란 팬들은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몇몇은 기사에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했지만, 대다수의 팬이 용홍리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아니, 어쩌면 베를루스코니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베를루스코니는 재벌이었다

 

용홍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 적다. 이는 인터 밀란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R.C.D 에스파뇰을 인수한 쑤닝과 완다, 그리고 라스타 같은 중국 자본가들과 대조된다. 이들은 중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거기에 중국의 부호 순위 100위 안에 들어가는 대자본가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용홍리는 이들과 달리 중국의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추정 자산이 5억 유로에 달한다는 말이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그 정도로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다수의 언론 보도를 인용하면, 이탈리아는 물론 중국과 홍콩에서도 용홍리를 잘 아는 이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구단을 인수 할 당시 용홍리의 자산이라고 주장했던 광산은 알고 보니 광둥 라이언의 투자자인 상빙리와 상송리의 자산이었다. 이들은 용홍리처럼 중국 남부의 마오밍시 지역 출신이었다.

 

이에 언론은 이들이 ‘리(Li)’ 성을 쓰고 마오밍시 출신이기에 용홍리와 혈연관계일 것이라 추측했지만, 두 사람은 그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답변했다. 이에 기자들은 용홍리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의 명으로 등록된 사무실 주소를 찾아갔지만, 해당 사무실 앞에는 임대료 미지급 문서가 붙어있었을 뿐,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용홍리는 2011년 주식 시장 상장 당시 자신을 그랜드 드래곤 홀딩 컴퍼니의 회장이라고 신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은 용홍리가 자신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 용홍리는 2013년에 부동산 회사를 매각해 5110만 달러를 벌었으나 이를 신고하지 않아 9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무엇보다 2004년 용홍리의 가족이 설립한 광둥 그린 리버 회사는 약 5000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수익을 약속했지만, 이들을 속이고 약 6830만 달러를 벌었다.

 

이는 베를루스코니와 닮으면서도 상당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에서 엄청난 자본력을 가진 인물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그는, ‘텔레밀라노라’라는 작은 케이블 텔레비전 회사를 설립한 것을 기점으로 미디어 산업에 뛰어들었다. 해당 방송국은 빠르게 성장했고, 그 이후에는 지상파 방송국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1997년에는 자신의 첫 미디어 그룹인 ‘핀인베스트’를 설립해 당시 약 2억 6000만 유로에 달하는 돈을 벌었다.

 

이후 베를루스코니는 철저하게 언론을 장악하면서 막대한 자본가로 성장했다. 그는 이탈리아 최초로 상업적 TV를 장악했다. 그리고 ‘미디어셋’은 전국 시청률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3개의 텔레비전 채널들과 이탈리아 최고의 광고 홍보 에이전시인 퍼블리 이탈리아를 가지고 있는 대그룹으로 성장했다.

 

물론, 이런 베를루스코니의 언론 장악 과정과 자금 세탁이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구단 부채 중 상당수가 그의 정치 자금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밀란 같은 명문 구단을 운영할 사람이라면, 자산의 규모 자체는 적더라도 베를루스코니처럼 어느 정도 검증된 재벌가여야만 하지 않은가.

 

베를루스코니 역시 용홍리를 탐탐치 않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구단을 매각한 이유는 이탈리아 자본가 중 밀란을 감당할 수 있는 재력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컨소시엄을 더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용홍리의 컨소시엄에는 막대한 재력가들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용홍리의 컨소시엄 구성원이라고 알려졌던 GSR 벤처 캐피털의 소니 우를 비롯한 이들은 밀란 인수 자체에 참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홍리와 컨소시엄에 관련된 이야기 자체를 나눈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용홍리가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에 대한 언급 자체를 거절했다.

 

베를루스코니는 과감하고 획기적이었다

 

말년에 베를루스코니가 보여준 행보는 실망스럽지만, 초창기 그의 행보는 과감하고 획기적이었다. 1986년에 구단을 인수한 베를루스코니는 당시 무명 감독이었던 아리고 사키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선임했다. 이들은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현대 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키 감독은 유로피언 컵 2연패를 달성하며 ‘밀란 제너레이션’을 구축했다. 만약 베를루스코니가 사키를 선임하지 않았다면, 그 위대한 밀란 제너레이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 시절 선수 생활을 보냈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역시 지금처럼 위대한 감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베를루스코니가 밀란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과 몰락을 이끌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지만, 영광의 시간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용홍리는 무모하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른다. 특히, 재정 부분에서는 지나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용홍리는 밀란의 인수를 위해 엘리엇 펀드로부터 3억 5400만 유로에 달하는 거액의 자본을 대출받았다. 문제는, 2018년 10월까지 엘리엇에게 2억 5300만 유로를 갚아야만 한다는 것인데, 이 중 약 1억 8000만 유로는 11.5%라는 높은 이자율을 가지고 있다.

 

용홍리는 이 문제를 중국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달 폐막한 ‘제19회 당 대회’ 이후 시진핑 주석의 중국 정부가 내세운 부정부패 개정안은 용홍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결국, 용홍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융자를 받는 것뿐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마르코 파소네 CEO는 재정 문제를 차환용 채권 발행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밝혔고 현재 JP모건으로부터 막대한 융자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이는 역시나 밀란이다. 구단의 부채 문제는 오히려 더욱 커졌다. 여기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한다면, 내년 이적 시장 때 그들이 애지중지하게 키웠던 지안루이지 돈나룸마와 마누엘 로카텔리 같은 선수들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주장 선임에 있어 베를루스코니는 명분과 실리를 따졌다

 

주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베를루스코니는 명분과 실리를 철저하게 따졌다. 그가 구단을 인수했었을 당시 주장이었던 프랑코 바레시는 밀란의 유소년 선수 출신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였다. 베를루스코니는 그의 주장 완장을 빼앗지 않았다.

 

차기 주장이 된 파올로 말디니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29살이었던 말디니의 나이도 있었지만, 그 역시 바레시처럼 밀란의 유소년 선수 출신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였다. 특히, 그의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도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었기에 구단에서 가장 특출난 존재였다. 그의 주장 선임은 기량과 상징성 측면에서 완벽했다.

 

그 뒤를 이어 주장이 된 마시모 암브로시니는 바레시나 말디니처럼 엄청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선수였다. 여기에 밀란에서 10년 넘게 뛰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물론, 베를루스코니 체제에서 마지막으로 주장이 된 리카르도 몬톨리보는 명분과 실리에서 앞서 언급된 이들 중 가장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친정 팀이었던 AFC 피오렌티나와 재계약을 거절했고 베를루스코니의 끈질긴 구애 덕분에 자유 계약으로 온 선수다. 기량이 떨어지면 모르지만, 안드레아 피를로의 장기적인 대체자로 언급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또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티아고 실바가 떠난 당시 선수단에 몬톨리보만큼 경험을 갖췄거나 뛰어난 리더십을 갖춘 선수가 적었다.

 

반면, 현재 주장인 레오나르도 보누치는 다르다. 그는 밀란의 라이벌인 인테르의 유소년 선수 출신이고, 유벤투스의 선수로 오래 뛰었다. 밀란과 접점 자체가 없다. 이런 선수가 이적하자마자 몬톨리보 대신 주장이 된 것은 용홍리의 실책이다.

 

보누치는 명분과 실리 모두 떨어 질 뿐만 아니라 몬톨리보가 주장인 상황에서 완장을 받았기에 더욱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보누치는 몬톨리보처럼 밀란으로 이적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움직였던 시간이 짧았다.

 

밀복적이 아니라 밀강점기

 

로쏘네리의 팬들은 베를루스코니와의 결별을 ‘밀복절(밀란의 광복절)’이라며 좋아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그저 ‘베강점기’에서 ‘리감정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이 칼럼은 베를루스코니가 매우 좋은 구단주였다는 것을 포장하는 게 아니다. 베를루스코니의 말년은 끔찍했다. 세리에A의 몰락을 야기한 것은 덤이다. 그와 같은 인물이 두 번 다시 등장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베를루스코니 시절이 지금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이유는, 용홍리가 보여주는 행보가 엉망이다 못해 끔찍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밀란은 이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유럽의 챔피언이라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밀란은 처참하다. 베를루스코니 시절 때 이것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고 여겼지만, 지금의 밀란은 그보다도 상황이 나쁘다.

 

세리에A가 살기 위해서는 유벤투스의 대항마인 인테르와 밀란이 다시 살아야만 한다. 하지만 인테르와 달리 밀란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세리에A의 부흥은 기약 없는 약속이 되고 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