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아주리 군단이 스웨덴에 패하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브라질 다음으로 가장 많은 월드컵 우승(4회)을 차지한 이탈리아에 이는 엄청난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에 축구란 종교와 다름없는 것이고, 1962년 칠레 월드컵부터 꾸준하게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리 군단의 실패는 이미 예견됐었다. 11년 전, 세계 챔피언이 된 2006년에조차 그들의 몰락을 예상했던 목소리가 있었다.
➀지안 피에로 벤투라 감독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후임자로 선임된 지안 벤투라 감독은 부임 당시부터 논란을 모았다. 역대 아주리 군단 감독 중 가장 형편없는 경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 국가 대표 팀을 지휘했던 감독들은 엄청난 경력을 자랑했다. 현대 축구의 아버지인 아리고 사키 감독, AC 밀란의 황금기를 경험했던 체사레 말디니 감독,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던 디노 조프 감독, 화려한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유벤투스를 이끌고 세리에A의 전성기에 정점을 찍었던 마르첼로 리피 감독, ACF 피오렌티나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인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 그리고 유벤투스의 명가 재건을 이끈 안토니오 콘테 감독 등 대부분이 그랬다.
전임자들의 경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주리 군단 감독은 주로 뛰어난 명성을 쌓은 선수 출신이거나, 팀을 꾸준하게 상위권으로 이끈 감독들이었다.
그러나 벤투라는 이와 거리가 멀다. 선수 생활은 형편없었고, 감독으로서 거둔 최고의 성적은 토리노 FC를 이끌고 7위를 차지한 2013/2014시즌뿐이다.
낮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무조건 실패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대표 팀의 감독이 되려면 전술적 기량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거둔 업적도 뒷받침돼야만 한다. 국가 대표 팀은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 모아놓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감독의 리더십은 이제까지 쌓아놓은 업적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벤투라는 아주리 군단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결국, 이탈리아 축구 협회의 선택은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벤투라의 아주리 군단은 뚜렷한 특징이 없었다. 볼 점유율을 우선시하지만, 좌우 측면에서 무작정 올리는 크로스 전술은 비효율적이었다. 그의 전술은 매 경기를 거듭할수록 비판의 대상이 됐다. 여기에 ‘함께 훈련할 시간이 부족했다’ 같은 발언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➁세대교체 실패
아주리 군단 몰락의 실질적인 원인은 역시나 세대교체 실패다. 이번 플레이오프에 선발된 선수단의 평균 연령은 만 27.6세지만, 지난 1차전에 선발 출전한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만 30.5세였다. 2차전에 선발 출전한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만 30세로 큰 차이가 없다.
이탈리아가 유로 2012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지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주전 선수들은 큰 변화가 없다. 여전히 수비진은 레오나르도 보누치와 안드레아 바르찰리, 조르지오 키엘리니가 중심이 된 BBC였고 수문장은 지안루이지 부폰이다. 중원에서 폭넓은 활동량을 가져가야만 하는 사령관 자리는 34살의 다니엘레 데 로시가 뛰고 있다.
사실 이러한 세대교체 문제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꾸준하게 언급됐다. 스페인은 페르난도 토레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라모스, 세스크 파브레가스 같은 신예들을 출전시켜 세대교체를 추진했다. 대회 기간 내내 ‘늙은 수탉’으로 평가받았던 프랑스마저 지네딘 지단이 은퇴한 이후 ‘제2의 지단’ 발굴을 위해 유소년 선수 육성에 더 많은 자본과 출전 기회를 제공하며 과감한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그러나 대회에 우승한 이탈리아는 이들과 달리 세대교체를 위한 움직임이 적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리 군단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세리에A의 몰락이 결정적이었다. 2006년 칼치오폴리 이후 뛰어난 선수들이 떠났고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이 청소년 노동법을 이용해 유소년 선수들을 약탈하면서 유소년 시스템 자체가 황폐해졌다. 설상가상 경제 불황까지 겹치면서 선수단 유출은 더욱 심해졌다. 이는 리그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외 리그로 이적한 유망주들이 카림 벤제마나 폴 포그바 같은 프랑스 선수들처럼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줬거나 두각을 드러냈던 것도 아니다. 페데리코 마케다나 파비오 보리니 같은 선수들이 기대를 모았지만, 이들은 제한적인 출전 시간과 기대 이하의 성장세를 보여주며 실패했다. 쥐세페 로시가 있었지만, 십자인대 파열로 기량을 만발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최근에는 세리에A 역시 자국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래전부터 세리에A에 정착한 라틴 아메리카 선수들이 이미 주전 자리를 꿰찼다. 최근에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바키아 같은 발칸 반도 국가 선수들이 이탈리아 선수들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발칸 반도 출신 선수들은 기술적이고 뛰어난 신체를 가졌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기후와 언어 등 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지 않아 실패할 확률이 낮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투자 대비 이득이 높아 재정적으로 열약한 세리에A 구단들이 많이 선호한다.
이처럼 지속적인 라틴 아메리카와 발칸 반도 출신 선수들의 유입은 세리에A 구단들이 자국 선수들을 중심으로 전력을 개편하지 못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것은 과거 게르만족을 비롯한 타민족 용병들에게 국경 문제를 맡겼던 로마 제국 말기를 보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레 국가 대표 팀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뛰어난 자국 선수들의 감소로 아주리 군단은 베테랑 선수들에게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유벤투스의 BBC 라인이 유럽 대항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에, 아주리 군단의 핵심 전술은 늘 스리백 시스템을 기반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세대교체 실패의 원인이 됐다.
물론, 최근 세리에A에는 로베르토 갈리아르디니와 다니엘레 루가니, 마누엘 로카텔리, 그리고 지안루이지 돈나룸마 같은 젊은 선수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과거 프란체스코 토티나 파올로 말디니 같은 황금 세대를 따라잡고자 한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과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만 할 것이다.
➂깨져버린 12년 결승 사이클
이번 러시아 월드컵 진출 실패로 이탈리아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때부터 이어진 12년 결승 사이클이 깨져버렸다. 12년마다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했던 이 사이클은, 이탈리아에게 승리의 상징이었다. (이탈리아는 1970, 1982, 1994, 2006년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했다)
만약 이탈리아가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면, 다른 나라보다 좀 더 기분 좋은 출발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먼 미래를 기약하게 됐다.
이제 조국 이탈리아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던 부폰 세대는 마침표를 찍었다. 새로운 세대가 빈자리를 차지해야 할 시간이 왔고 새로운 역사를 써야만 한다. 하지만 그 길은 절대 쉽지 않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희생을 각오해야만 한다.
과거 로마는 실패로부터 성공을 배웠다. 패배는 로마가 카르타고라는 지중해 최강대국을 꺾고, 위대한 공화국, 나아가 제국으로 발전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제국의 번영에 따라 패배를 잊게 된 로마 제국은 성공에 도취해 몰락을 자초했고 게르만족과 이슬람 세력에 멸망했다.
아주리 군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펠레의 브라질과 호마리우의 브라질, 그리고 지네딘 지단의 프랑스에 패했던 이탈리아는 패배를 통해 승리하는 법을 배웠다. 패배는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였다.
그리고 이제 아주리 군단은 승리를 위해 다시 패배를 감내해야 할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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