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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지난여름, AC 밀란은 마침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구단주와 결별할 수 있었다. 새로운 구단주 홍콩의 자본가 용홍리는 2억 유로가 넘는 자본을 투자해 레오나르도 보누치와 안드레 실바, 프랭크 케시에를 비롯해 많은 선수를 영입했다. 여기에 떠날 것이 유력했던 지안루이지 돈나룸마와 재계약을 맺으며 내실을 다지는 데 성공한 만큼, 밀란은 빠르게 정상궤도에 들어설 듯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여니 밀란의 성적은 지난 시즌과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부진한 성적에도 돈나룸마와 마누엘 로카텔리 같은 유소년 선수들의 성장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준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은 팬들에게 좌절감만을 안겨주고 있다.

 

➀불안정한 구단 상태

 

밀란이 부진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조직력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필자는 불안정한 구단 상태가 선수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밀란은 지난여름 이적 시장 때 선수 영입으로 2억 유로가 넘는 거액의 이적료를 투자했다. 새로운 구단주인 용홍리의 자산이 5억 유로에 불과하다는 점과 엘리엇 헤지 펀드로부터 대출을 받아 구단을 인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박이나 다름 없는 결정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이후 부정적인 보도가 이어진 것이다. 첫 번째, 용홍리가 8월에 추가적인 대출을 받았으며, 다가올 11월까지 엘리엇 펀드에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구단의 경영권을 뺏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 번째, 중국의 당 대회 이후 한숨을 돌린 인터 밀란과 달리 밀란은 정반대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중국 정부가 반(反) 부패 정책을 선언하면서 국외 자본을 해외로 빼돌리는 이들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엘리엇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밀란에 투자한 용홍리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여기에 밀란과 20년 가까이 함께 한 아디다스마저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해지하면서 불안감을 키웠다.

 

이처럼 구단의 불안정한 상태는 선수들에게 ‘이번 시즌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재정이 악화할 테니 선수를 매각할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이 내가 될 수 있다’와 같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안겨줄 수 있다. 여기에 성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선수들이 받는 압박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➁핵심 선수의 부재

 

다수의 밀란 전설들은 구단이 지난여름 이적 시장 때 실바를 영입하자 왜 그런 선수를 영입했는지 모르겠다며 구단의 영입 정책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확실하게 검증된 월드 클래스 공격수만이 변화를 이끌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공격에서 핵심 선수가 되리라고 기대를 모은 실바는 오히려 유소년 선수인 파트리크 크로토네만 도 못한 기량을 보이고 있다. 수비의 핵심이 될 보누치는 부진에 빠졌다. 이들뿐만 아니라 이번에 영입한 대부분의 선수가 기대 이하의 모습이다. 오히려 이적 당시 비판을 받은 파비오 보리니가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핵심이 될 선수가 없다는 것은 장단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핵심 선수를 중심으로 전술을 짜지 못할 뿐 아니라, 이적 시장 때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➂실바와 돈나룸마의 부진

 

다시 한 번, 큰 기대를 모으며 이적한 실바는 현재 부진하고 있다. 유로파 리그에서는 3경기 4득점에 성공하며 맹활약하고 있지만, 막상 리그에서는 6경기를 치르는 동안 득점은커녕 1도움도 기록하지 못했다.

 

실바의 부진으로 밀란은 잡아야 할 경기를 잡아내지 못했다. 시즌 초반 크로토네와 칼리아리, 우디네세, 스팔 같은 팀들을 상대로는 무난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승리할 수 있었던 밀라노 더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특히, 인테르의 마우로 이카르디가 해트트릭으로 승리를 이끌자, 실바를 향한 비판은 더욱 커졌다.

 

실바가 무득점 행진을 이어간다면, 밀란은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실바 대신 파트리크 쿠트로네와 니콜라 칼리니치를 적극적으로 기용해야만 한다. 지금 밀란은 한 경기, 한 경기가 급하다. 이길 수 있는 경기는 이겨야만 한다.

 

또한, 600만 유로가 넘는 연봉을 받으며 재계약을 체결한 돈나룸마는 지안루이지 부폰의 후계자로 평가받았던 지난 시즌의 활약을 계속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즌 돈나룸마는 리그 38경기 45실점, 12개의 클린 시트, 그리고 경기당 3.55개의 선방을 기록하며 세리에A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했다. 지난 시즌 밀란 수비진의 상태를 고려하면 놀라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다르다. 리그 11경기 16실점, 3개의 클린 시트, 그리고 경기당 1.64개의 선방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다. 지난 시즌 막지 못할 슛도 막았던 그의 활약을 생각하면, 이번 시즌에는 막아야 할 슛도 막지 못하고 있다.

 

➃플랜 A의 부재

 

밀란은 조직력 문제를 겪으며 부진한 인테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지난여름 이적 시장 때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프리 시즌 때 바이에른 뮌헨을 4:0으로 격파하며 어느 정도 완성된 조직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몬텔라 감독은 여전히 확실한 플랜 A를 만들지 못했다.

 

필자는 이 원인이 보누치 영입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밀란은 지난여름 계획적인 이적시장을 보냈지만, 보누치는 영입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누치를 영입하면서 몬텔라 감독은 기존에 구상한 전술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 변경은 독이 되어, 몬텔라 감독은 현재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전술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시즌 초반 몬텔라 감독은 4-3-3 포메이션을 밀란의 플랜 A로 쓰고자 했었다. 하지만 선수단은 이러한 전술에 적응하지 못했고 오히려 좋지 않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설상가상 4백 시스템에 취약한 보누치의 약점이 노출됐고, 이는 보누치의 자신감 하락과 함께 부진으로 이어졌다.

 

이에 몬텔라 감독은 보누치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3백 시스템을 선택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역할이었던 안드레아 콘티가 십자인대 파열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케시에는 확실하지 못한 밀란의 전술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몬텔라 감독은 빠르게 해답을 찾아야만 한다. 부진이 이어질수록 밀란에서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후임으로 밀란의 전설인 젠나로 가투소가 물망에 오른 상황이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다.

 

➄보누치의 주장 선임

 

필자는 밀란과 아무 관련 없는 보누치가 주장으로 선임된 것도 문제였다고 본다. 전임 주장인 리카르도 몬톨리보는 밀란과 아무 연관이 없었지만, 적대 관계 구단에서 뛴 선수가 아니며 밀란에서 뛰기 위해 AFC 피오렌티나와 재계약을 거절했었다. 또한, 당시 선수단에 몬톨리보만큼 경험을 갖췄거나 뛰어난 리더십을 갖춘 선수가 적었다.

 

반면, 보누치는 다르다. 그는 밀란의 라이벌인 인테르의 유소년 선수 출신이고, 유벤투스의 선수로 오래 뛰었다. 거기에 몬톨리보가 4년 동안 주장으로 있던 상태였다. 이런 선수가 이적하자마자 주장으로 선임된 것은 새로운 경영진의 실책이다.

 

이렇게 될 경우 기존의 선수단은 새로운 경영진의 선택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보누치가 주장직을 맡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제기될 수 있다.

 

만약 보누치가 밀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면 이러한 불만은 일시적으로 조용해지겠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금처럼 부진하다면 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보누치가 라커룸을 장악하는데 어려움을 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얼마 전 주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여름은 오랫동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임 구단주로 고통받았던 밀란 팬들에게 고진감래 같은 시간이었다. 팬들은 밀란의 화끈한 투자를 보며 머잖아 밀란이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달콤할 것으로 보였던 용홍리와의 허니문은 고진감래가 아닌 첩첩산중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