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트라이브=최유진 기자] 농구에는 식스맨이라는 포지션이 있다. 선발로 잘 나오지는 않으나 경기 중간에 투입되어 다양한 전술 변화나 선발 선수의 부상 혹은 체력 관리 등을 가능케 한다. 어느 특정한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스타일보다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나 한순간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선수가 식스맨으로 주목받지만, 어떻게 보면 주전이 될 실력이 없는 선수가 받는 포지션이라는 관점도 가능하다.
차범근, 박지성의 뒤를 잇는 대한민국 최고의 해외파 축구 선수, 손흥민의 입지가 딱 식스맨이다. 지난 시즌 놀라운 활약으로 커리어 하이를 보여준 손흥민이지만 아직 팀에서는 확고부동한 주전이 아니다. 물론 포지션 구분이 엄격한 축구에서 식스맨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나 손흥민은 축구에서 흔히 말하는 유틸리티/멀티 플레이어가 아닌 식스맨에 가까운 입장이다. 두 용어를 굳이 구분짓자면, 유틸리티 플레이어는 다재다능해서 다양한 포지션을 맡지만, 식스맨은 팀 상황 혹은 선수 스타일에 한계가 있어 주전 자리를 맡지는 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시즌 손흥민은 잘했다. 모든 대회 포함 21골, 리그에서만 14골 6어시스트를 터트리며 공격 포인트만 놓고 보면 첼시의 에덴 아자르나, 리버풀의 필리페 쿠티뉴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다. 많이 뛰고 돌파도 잘한다. 벤치에 머무르게 두기는 아까운 자원이다. 그래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홋스퍼 감독은 손흥민에게 중앙 공격수, 측면 공격수, 좌우 윙백 등 다양한 역할을 맡긴다. 비록 EPL의 전설 앨런 시어러도 “더 선”에 기고한 칼럼에서 “손흥민은 한 번도 윙백으로 출전한 적이 없고, 돌파에 강점을 가진 선수를 윙백으로 출전시키는 것은 잘못된 전술이다” 라고 포체티노의 전술을 비판한 바도 있고, 손흥민 본인도 다양한 포지션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점차 좋은 활약을 보이며 2번의 이달의 선수상, EPL 공식 랭킹 15위, EPL 파워랭킹 14위, 데일리 텔레그래프 선정 공격수 랭킹 9위 등에 선정되며 EPL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선수라는 평까지 듣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자리든 손흥민이 확고부동하게 눌러앉은 적은 없다. 2016/17 시즌 리그 34경기를 출전하면서 마치 확고부동한 주전처럼 보이지만 실상 출전 시간은 2068분. 34경기 중 11경기는 선발 출장이 아니며 선발 출장한 경기도, 풀타임을 소화한 경기도 많지 않다. 특히 토트넘의 3백 시스템이 정착한 후, 손흥민의 포지션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지난 시즌 끝에 겪은 부상 여파도 있지만, 직접적 경쟁자인 델레 알리나 크리스티안 에릭센 등이 결장해도 페르난도 요렌테, 무사 시소코가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고 있어 상황은 더욱 나쁘다. 지금까지 공격 포인트도 1득점, 0도움으로 지난 시즌과 비교해 페이스가 떨어지고 있다. 직전 10월 17일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 토트넘의 2017/18시즌 유럽 챔피언스 리그 H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겨우 4분 정도 출전했다.
지난 시즌 이미 실력을 입증한 손흥민이 EPL의 빅클럽, 토트넘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손흥민은 장단점이 뚜렷한 선수인데, 그 장점이 다른 경쟁자를 제칠 정도로 뛰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해리 케인보다 더 골을 잘 넣고, 포스트플레이를 잘했다면 토트넘의 스트라이커는 손흥민이었을 것이다. 델레 알리처럼 득점과 플레이메이킹, 빌드업에 고루고루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델레 알리를 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손흥민은 둘 모두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손흥민을 완성된 축구 선수라고 하기에는 단점이 너무 많다. 공간 이해도가 떨어지기에 압박에 취약하다. 볼을 받을 때 완전히 소유하고 나서야 움직임을 이어가는 만큼 순간적인 돌파나 득점을 하는 데 능하지 못하다. 체력 역시 뛰어난 편이 아니다. 선발로 출장해도 풀타임을 소화하는 횟수가 적다는 것은 스태미너를 효율적으로 조절하지 못하거나, 아예 조절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2선 선수에게 많이 요구되는 돌파 후 크로스나, 키패스 역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포지션으로 전환하기에는 수비 기술이나 몸싸움, 제공권 등 오히려 부족한 것이 더 많다.
빠르게 돌파를 잘하고 골을 잘 넣는 양발 윙어라는 입지는 현대 축구에서도 충분히 중요한 역할이다.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팀의 전술 문제도 크다. 하지만 월드 클래스를 노리고자 한다면, 앞으로 본인에게 없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거나 혹은 장점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손흥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경쟁자인 델레 알리나 에릭센이 부상으로 전력을 이탈하면 손흥민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지켜내는 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두 선수, 혹은 손흥민 본인이 이적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실력으로 주전 자리를 쟁탈할 수도 있다.
손흥민은 빅리그에서만 계속 뛰며 아시아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히던 선수다. 그러나 어느덧 만 25세, 유망주라 불릴 나이는 지났다. 지금의 활약만 이어가도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 테다. 나이는 젊지만 국가대표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 중 하나다. 하지만 손흥민에게는 단순히 잘하는 해외파 한국 축구 선수가 아닌,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만한 잠재력이 있다. 그건 운도 따라줘야겠지만 결국에는 본인 하기 나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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