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2연패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여기에 2011/12시즌 이후 5년 만에 라 리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대다수의 축구 전문가와 팬들은 “이제 레알의 시대가 왔다”며 지네딘 지단 감독과 선수단을 극찬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 레알은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리그에서는 승격 팀 지로나에 1:2로 충격 패를 당하며 선두 FC 바르셀로나와 승점이 8점 차까지 벌어졌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홋스퍼에 1:3으로 패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레알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그동안 레알은 ‘갈락티코’라는 기치 아래 선수들이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이며 성공을 추구했던 구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레알은 분에 넘치는 성공으로 자만해 있다.
➀안일했던 이적 시장과 동기 부여의 결여
2017년 여름 이적 시장은 레알에 있어 유망주 중심 정책과 함께 다른 팀들과 격차를 확실히 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지난 시즌의 문제점은 명확했다. BBC 라인은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대로 예전 같지 않아 결별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중앙 수비수 케플러 페페의 공백과 팀의 수문장 케일러 나바스의 기복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노쇠화 시점에 다가선 루카 모드리치와 마르셀로의 장기적인 대체자 영입도 필수였다.
영입은 구단의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지난여름, 킬리앙 음바페나 지안루이지 돈나룸마, 니콜라스 오타멘디, 제롬 보아텡, 다니 세바요스, 막심 로페즈, 테오 에르난데스 등의 영입설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레알은 세바요스와 에르난데스의 영입과 마르코스 요렌테, 보르하 마요랄, 헤수스 바예호의 복귀를 끝으로 이적 시장을 마감 지었다. 이것은 매우 안일한 선택이었다.
우선, 수비진부터 이야기해 보자. 지난 시즌 페페의 공백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새로 합류한 바예호는 지난 2년 동안 고질적인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라파엘 바란 역시 고질적으로 하체 부상을 안고 있으며, 세르히오 라모스는 2년 전 어깨 부상을 당한 이후 들쭉날쭉한 몸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대신할 나초 페르난데스는 전문 중앙 수비수가 아니다.
페페와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후속 조치였다. 오타멘디처럼 건강하면서도 풍부한 경험을 가진 베테랑 중앙 수비수가 필요했지만, 레알은 자신들의 선수단을 과신했다.
공격진으로 넘어가 보자. 지난 2년 동안 팀 최전방의 전방 압박 능력과 활동폭, 그리고 생산력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특히, 알바로 모라타와 마리아노 디아스의 이탈로, 레알이 자랑하던 역습 상황에서의 속도와 공격력이 매우 감소했다. 가레스 베일은 부상으로 인해 없는 선수나 다름없다.
레알은 지난여름에 BBC 라인을 해체하고 음바페나 마우로 이카르디, 파울로 디발라 같은 공격수들을 영입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파리 생제르망의 자금력을 과소평가하며 음바페 영입에 실패했고, BBC 라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베일을 잔류시켰다. 카림 벤제마에게는 재계약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이카르디나 디발라의 영입이 불가능했다면, 페르난도 요렌테 같은 베테랑 공격수를 영입해 공격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레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팀으로 복귀한 마요랄은 지난 시즌 볼프스부르크에서 제한적인 출전 시간만을 부여받아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잔류보다도 임대를 통해 더 많은 출전 시간을 부여받아야 했다. 모라타처럼 특급 조커 역할을 하게끔 성장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 선발 출전해야 더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초반 나바스가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고질적인 하체 부상 재발로 또다시 전력에서 이탈했다. 레알은 지난여름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지안루이지 돈나룸마를 저렴한 이적료로 영입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그 기회를 발로 차버렸다. 그리고 현재 나바스를 대신해 출전하는 키코 카시야는 연패의 원흉이 되고 있다.
필자는 현재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의 스페인 선수 중심 정책에 매우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지단이 원하는 폴 포그바와 킬리앙 음바페 같은 프랑스 선수들은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굳이 영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며 일찌감치 영입을 포기하지만, 세바요스 같은 스페인 선수가 이적 시장에 나오면 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영입하는 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나중에 다른 칼럼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이 정책은 위험성이 매우 높다. 아무래도 페레즈 회장은 자신이 존경하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의 예예 정책을 21세기에 재연하고 싶어 하는 듯하지만, 현대 축구에서 예예 정책을 재연하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다.
고인 물은 결국 썩게 된다. 그리고 거대한 성공은 늘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한다. 하지만 안정은 안일함과 친근하다.
지난 3년 동안 선수단 변화는 극히 적었다. 당연히 과거처럼 치열한 주전 경쟁은 사라졌고, 라 데 시마 등 거대한 목표 의식 자체가 상실됐다. 목표 의식의 상실은 동기 부여로, 나아가 경기력 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 시즌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문제점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➁뻔한 교체 패턴과 무의미한 크로스 전술
70~75, 85, 90.
이번 시즌 레알의 경기를 자주 접한 사람들은 저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알 것이다. 그렇다. 바로 지네딘 지단이 선수 교체를 하는 시간대다.
이번 시즌 지단은 선수 교체를 하는 시점이 늦어지고 있다. 필자가 이에 대해 변호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1위 바르사와의 승점 차이를 줄이고자 하다 보니 주전 선수들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모라타와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이적으로 백업 선수들의 전력이 월등히 약해졌다. 마요랄과 세바요스 같은 선수들이 있지만, 이들의 기량은 앞서 언급한 선수들에 비해 떨어진다. 그렇다 보니 지단은 주전 선수들을 더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시즌 주로 교체 투입된 선수들이 루카스 바스케스와 마르코 아센시오라는 점만큼은 쉽게 변호할 수 없다.
아센시오는 이번 시즌 극도의 부진에 빠지고 있다. 성장의 과정일 수도 있지만, 지난 시즌 측면과 중앙을 자유롭게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했던 선수가 이번 시즌은 어느 자리에서든지 간에 부진하다 보니 그 쓰임새가 제한되고 있다.
바스케스는 이제 완전한 ‘원 패턴’ 유형의 선수로 전락했다. 상대 수비수들은 그를 견제하지 않고 측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게 놔둔다. 그 대신 페널티 박스에 여러 명의 수비수를 밀집시킨다. 바스케스의 기량이 다른 선수들 보다 떨어지다 보니 측면에서 크로스를 날리는 것 이외에 특별한 장점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시즌 바스케스가 교체 출전한 대부분의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제치는 경우보다 좌우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문제는 이 크로스 전술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로스는 가장 효과적인 공격 방법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의미한 공격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 레알에는 하메스와 다니엘 카르바할처럼 정확한 크로스를 올리는 선수가 있었고, 이를 마무리할 수 있는 호날두와 모라타, 세르히오 라모스가 있었다.
하지만 하메스는 없고, 카르바할은 심장 문제로 경기에 이탈했다. 모라타는 이제 없다. 그리고 상대 수비수들은 페널티 박스에서 호날두와 라모스를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날카롭지 못한 바스케스의 크로스는 오히려 상대에게 역습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이렇다 보니 전술 변화가 이뤄져야 할 마지막 20여 분 동안 공격에서의 생산력이 극도로 떨어진다. 종종 바스케스 대신 세바요스와 마요랄이 교체 출전하지만, 이들은 85분이 돼서야 기회를 잡는다. 5~10분 남짓한 시간에 무엇을 보여주란 말인가?
또한, 이처럼 뻔한 공격 패턴을 상대 팀들이 다 간파하고 있음에도 지단은 어떠한 전술적 변화를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는 세바요스와 요렌테, 마요랄 같은 또 다른 전술을 만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이들을 활용한 새로운 전술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➂A팀과 B팀이 확실한 선수단 운영
지난 시즌 레알은 챔피언스 리그와 라 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지난 시즌 경기력이 좋았던 것은 모라타와 마테오 코바시치 같은 백업 선수들이 출전했을 때와 이스코를 주전으로 기용한 후반기 때뿐이었다. 또한, 지단은 시즌 내내 A팀과 B팀이 확실한 선수단 운영을 했다.
지난 시즌 지단의 선수단 운영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스코와 모라타의 ‘두 번째 요리와 디저트’ 농담은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비꼰 것이었다. 이에 대해 지단은 “나에게는 모든 선수가 다 소중하며, A팀과 B팀으로 나눠서 운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그 경계는 확실히 있었다. 그리고 이를 참지 못한 모라타와 하메스는 이적을 선택했다.
문제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A팀과 B팀의 경계가 명확한 선수단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크모카 조합에는 변함이 없고, 벤제마와 호날두, 그리고 이스코로 이루어진 공격진에도 변화가 없다. 그러나 상대팀은 이미 크모카 조합의 장단점과 벤제마와 호날두 조합의 공격 루트를 파악하고 있다. 이스코가 아무리 잘한다 한들 그 혼자 많은 짐을 짊어지기에 벅차다.
만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나 맨체스터 시티의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이었다면, 새로운 조합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술적 변화를 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네딘 지단의 선수단 운영은 너무나 정적이라, 이러한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선수라면, 이러한 고정적인 선수단 운영을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러한 보수적인 선수단 운영은 선수단의 인내심에 한계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주전 선수들에게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데서 문제를 보이고 있다.
레알이 지속적으로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 야망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레알을 매우 냉정한 구단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지속적으로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이 원동력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경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레알은 그들을 지탱해줬던 ‘성공’이라는 야망에 굶주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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