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축구 FIFA 월드컵

[카드 뉴스] “너는 선수를 물었니? 나는 바지를 찢었어” 역대 월드컵 사건 사고들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치러진 월드컵마다 사건 사고가 벌어졌다.

그렇다면 카드 뉴스를 통해 역대 월드컵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보자.

딱히 큰 사건이 없었던 1938년 프랑스 월드컵과 1958년 스웨덴 월드컵, 1974년 서독 월드컵은 제외했다.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공인구가 없었기에 서로 자국에서 생산한 공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는 전반전 때 아르헨티나 공을, 후반전 때 우루과이 공을 썼다.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 패해 우승을 놓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자국에 있던 대사관을 공격하는 등 폭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우루과이와 1년 정도 단교를 선언했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최악의 월드컵으로 평가받는 대회. 베니토 무솔리니는 월드컵 우승을 위해 심판 매수 등 경기 내외적으로 깊게 관여했고 루이스 몬티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강제로 귀화시켰다. 그리고 “우승하지 못하면 사형”이라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다. 또한,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이 4강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패하자 선수단을 집단 구속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16강전에서 오스트리아 지알의 득점은 부심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선언했지만, 네덜란드 주심 판 무어셀은 득점으로 인정했다. 경기 후 판 무어셀은 “밀라노에서 벌어진 스위스와 네덜란드 경기에서 스위스가 네덜란드를 3:2로 격파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그만 뼈아픈 오심을 자행했다”라고 밝혔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브라질과 우루과이와의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충격 패하자 마라카낭 경기장에 있던 관중 중 일부가 자살했거나,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그리고 브라질 축구 협회는 결승전 때 선수들이 있었던 흰색 유니폼을 모조리 불태운 후 오늘날 노란색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8강전에서 헝가리의 히데그구티가 브라질을 상대로 경기 시작 4분 만에 선제 골을 넣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브라질의 수비수가 히데그쿠티의 유니폼 하의를 찢어버렸다.

후반전 때 헝가리가 페널티 킥으로 추가 골을 넣자 브라질 측 기자들과 축구협회 임원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경기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경기장 밖으로 쫓겨났다.

얼마 후 보지크 요제프가 니우통 산투스에게 파울을 범하자 두 선수는 충돌했다. 그 결과 모두 퇴장당했다. 그리고 얼마 후 로란트 줄러를 걷어찬 브라질의 움베르투 토치도 필드 밖을 나갔다.

경기 종료가 가까워질수록 두 팀의 반칙은 심해졌다. 총 42회의 프리킥과 두 번의 페널티 킥이 나왔으며, 선수들에게 네 장의 옐로카드와 세 장의 레드카드가 나왔다.

경기 종료 이후에도 양 팀간의 싸움은 계속됐다. 경기장 밖을 빠져나오던 핀헤이류가 헝가리 관중석 쪽에서 날아온 병에 맞아 쓰러지자 브라질 선수단이 헝가리 선수단의 라커룸에 난입해 난투극을 벌였다.

이 경기의 주심을 본 아서 에드워드 엘리스 심판은 “내가 주관한 경기 중 가장 이색적이었다. 그들이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동물처럼 행동했다. 수치스럽다. 끔찍한 경기였다. 오늘의 우중충한 날씨가 선수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 퇴장을 유발해 경기를 망쳤다”라고 평가했다.

1962년 칠레 월드컵

개최국 칠레와 이탈리아의 경기는 치열했다. 조르지오 페리니가 거친 파울로 퇴장당했지만, 선수는 그라운드 위를 떠나지 않고 버텼다. 이에 경찰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냈다. 흥분한 이탈리아 선수들의 플레이는 거칠어졌고 칠레 역시 거친 플레이로 맞섰다. 마리오 다비드가 한 칠레 선수를 머리로 들이받자 퇴장당했다. 이탈리아는 전반전에만 두 명의 선수를 퇴장으로 잃어버렸다. 칠레의 레오넬 산체스는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마스키오의 코를 부러뜨렸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인 안토니오 라틴이 루돌프 크라이트라인 주심에게 욕설했다며 퇴장당했다. 정작 서독 출신이었던 크라이트라인은 스페인어를 잘 알지 못했다.

이에 격분한 라틴은 스페인어를 통역할 사람을 불러 달라며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고 농성했다. 선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걸어 나올 카펫에 앉았으며 두 명의 경찰관에게 끌려 나오기 전까지 영국의 우승기를 향해 찡그린 표정을 했다.

잉글랜드와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때 제프 허스트의 슛이 서독의 골포스트 상단을 맞고 지면에 튕겨 나왔다. 심판은 이를 득점으로 인정했다. 서독 선수들은 판정에 항의했지만, 심판은 이를 무시했다. 경기는 잉글랜드의 승리로 끝났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대회 본선보다 지역 예선에서 큰일이 벌어졌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 전쟁’이 발발했던 것.

온두라스에서 치러진 지역 예선 1차전에서 온두라스 시민들이 엘살바도르 선수단 숙소 바로 옆에서 밤새도록 축제를 벌였다. 엘살바도르에서 치렀던 2차전에서는 호텔 요리사가 대량의 설사약과 수면제를 넣은 요리를 경기 당일 아침으로 온두라스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엘살바도르에서 온두라스의 한 소녀가 자국 대표팀이 0:3으로 패한 것에 충격을 받아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유혈 사태를 우려한 FIFA는 지역 예선 3차전을 제삼국인 멕시코에서 열었다. 멕시코는 사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10만 명의 관중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에 2만 명만을 입장시키기로 했다. 그나마도 경찰이 관중보다 많았다.

엘살바도르가 3:2로 승리하자 온두라스 정부가 먼저 단교를 선언했다. 그리고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의 공군기지를 기습 선제공습하며 전쟁이 발발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이탈리아 월드컵과 함께 최악의 월드컵으로 평가받는 대회. 아르헨티나의 군부 정권이 직접 월드컵에 개입하면서 많은 논란을 빚었다.

1라운드를 통과한 아르헨티나는 2라운드에서 원래 같은 시간대에 일정이 잡힌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최종일정을 각종 핑계를 내세우며 깨트리고 브라질이 먼저 경기를 갖도록 대회 시간을 조종하였다. 이에 브라질 축구협회와 당시 브라질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쿠티뉴 감독이 조직위원회 측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무시됐다.

결국, 아르헨티나가 페루를 6:0이란 일방적인 점수로 승리하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훗날 아르헨티나가 페루 정부와 선수들에게 35,000톤의 곡물을 비롯해 경제적 지원을 해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승전은 더욱 가관이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아르헨티나의 과도한 꽃가루 응원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네덜란드 선수들이 투숙한 호텔 앞에서 소음과 농성을 벌이며 상대 팀의 수면을 방해했다.

또한, 정부가 사전에 포섭한 세르지오 고넬라 주심은 편파 판정을 통해 네덜란드의 전력을 무력화시켰다. 결국, 대회는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끝났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서독과 오스트리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이 승부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3점 이상의 점수로 패하지만 않으면 다음 라운드 진출을 할 수 있었다. 반면, 서독은 오스트리아를 이겨야 다음 라운드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

당시만 해도 조별 리그 최종전은 동시에 진행되지 않았고 같은 조에 속했던 알제리와 칠레 사이의 경기가 서독과 오스트리아 사이의 경기보다 하루 먼저 진행되었다. 그래서 두 팀은 다른 팀의 경기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결국, 서독과 오스트리아와의 경기는 서독이 전반 10분 선제 골을 넣은 이후 시간을 보내는 데에만 집중했다. 이 경기는 승부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FIFA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승부 조작을 막기 위해 조별리그 최종전은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서독의 골키퍼 하랄트 슈마허는 프랑스와의 4강전에서 문전에서 득점 기회를 얻은 프랑스 수비수 파트리크 바티스통을 가격했음에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부상을 당한 바티스통이 파울을 범했다고 선언됐다. 이 판정은 세계 최악의 오심으로 기록됐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그 유명한 ‘신의 손 사건’이 벌어졌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손으로 공을 건드렸고 그대로 득점으로 인정됐다.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서독의 루디 펠러와 네덜란드의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충돌했다. 두 선수는 신경전을 벌이다가 모두 퇴장당했다. 그리고 레이카르트는 펠러에게 침을 뱉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일랜드와 멕시코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사건이 터졌다. 아일랜드가 0:2로 지고 있자 존 알드리지가 교체 투입을 준비했다. 그러나 교체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자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독일과 유고슬라비아 경기 때 독일의 훌리건이 쇠파이프로 프랑스 경찰을 폭행하여 의식불명으로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6주 만에 깨어났지만, 이후 반신불수로 살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독일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프랑스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브라질의 호나우두는 발작했다. 그러나 브라질 축구 협회는 결승전 명단에서 제외된 호나우두를 선발 출전시키라고 명령했다. 경기는 프랑스의 3:0 완승으로 끝났고 ‘아트사커’의 황금기가 열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이탈리아 대표팀이 숙소로 썼던 천안 연수원에서 뱀이 나왔다. 이탈리아는 로마 시절부터 진영에서 뱀이 나타나면 전쟁에서 진다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이를 잘 알고 있던 이탈리아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안정환에게 결승 골을 허용하며 1:2로 역전패했다.

경기에서 패한 이탈리아 선수단은 취재진에게 욕설을 퍼부었으며, 팬들과의 악수도 거부했다. 또한, 경기를 주관했던 비론 모레노 주심을 비판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포르투갈과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웨인 루니가 히카르두 카르발류의 사타구니를 밟았다. 이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격렬하게 항의했고 루니는 퇴장당했다. 이 사건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선수였던 호날두에 대한 여론이 악화했다.

결승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의 도발에 넘어간 지네딘 지단은 그의 가슴을 향해 박치기했다. 지단은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를 퇴장으로 마무리해야만 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잉글랜드와 독일과의 경기에서 프랭크 램파드의 슈팅이 골문 안에 들어갔음에도 무효 처리가 됐다. 잉글랜드는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경기는 독일의 4:1 승리로 끝났다. 이에 조제프 블라터 FIFA 전 회장이 잉글랜드에 사죄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루과이와 가나와의 8강전에서 루이스 수아레스가 연장전 종료 직전 골문으로 들어가던 슛을 손으로 막아냈다. 수아레스는 퇴장당했지만, 우루과이는 승부차기 끝에 가나를 격파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수아레스가 조르지오 키엘리니의 어깨를 물었다. 수아레스는 이 일로 A매치 9경기 출전 징계를 받았고 4개월 동안 축구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았다.

또한, 대회에서 우승한 독일 대표팀은 자국에서 열린 우승 축하 행사에서 남미 국가들을 비하했다는 퍼포먼스를 펼쳤다며 논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