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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보감: 브라질] “러시아는 브라질이 아니니까” ➁역대 스타

펠레

 

브라질은 물론이고 전 세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1956년 산투스 FC에서 1군 생활을 시작한 펠레는 만 17살이 되던 1958년에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대표팀에 동석했던 한 심리학자는 펠레와 가린샤가 너무 어린 선수이기에 선수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정신이 부족하고 책임감이 없다며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비센치 페올라 감독에게 펠레를 선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페올라는 펠레를 선발했다.

 

페올라는 펠레를 소련과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시켰다. 당시 소련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인 레프 야신이 뛰고 있었다. 그러나 펠레는 소련을 상대로 맹활약했고 조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8강 상대인 웨일스를 상대로 결승 골을 넣었다. 이 득점으로 펠레는 월드컵에서 최연소로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8강 상대는 프랑스였다. 당시 프랑스는 세계 최고의 선수인 레몽 코파와 쥐스트 퐁텐이 버티고 있었다. 특히, 퐁텐은 모든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매서운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펠레는 이 프랑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브라질은 5:2라는 점수로 프랑스를 꺾었다.

 

기세를 탄 펠레는 결승전에서 개최국 스웨덴에 두 골을 넣으며 조국의 첫 번째 월드컵 우승을 안겨줬다. 이 대회는 말 그대로 펠레의 ‘대관식’이었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펠레는 이후 당대 최강의 팀인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FC 같은 팀들 이적에 연결됐다. 그러나 매번 산투스 잔류를 선언했다.

 

1962년 칠레 월드컵에 참가한 펠레였지만, 이때 부상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다. 브라질은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펠레에게 아주 아쉬운 대회였다.

 

그다음 열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도 펠레의 아쉬움은 계속됐다. 브라질은 첫 상대인 불가리아를 격파했지만, 펠레는 이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다. 펠레가 빠진 브라질은 헝가리에 무너졌다. 급해진 브라질은 부상에서 덜 회복한 펠레를 출전시켰지만, 에우제비오의 포르투갈에 두 골을 허용하며 1:3으로 졌다. 3연패를 노렸던 브라질은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씁쓸한 성적표를 받았다.

 

4년 후 다시 월드컵에 참가한 펠레는 이전 대회에서의 굴욕을 씻기 위해 단단히 이를 갈았다. 브라질은 3전 전승으로 조별 리그를 통과했고 8강과 4강을 넘어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지아친토 파케티와 산드로 마촐라를 비롯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뛰고 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탈리아도 펠레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선제 골을 넣은 펠레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조국의 세 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 대회는 펠레가 마지막으로 참가한 월드컵이었다. 이 브라질 선수는 1971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이후 산투스에 집중했던 펠레는 1974년을 끝으로 팀을 떠나 미국의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3년 후 완전히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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