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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보감: 아르헨티나] “메시는 메시다” ➁역대 스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아르헨티나는 수많은 전설을 낳았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거론할 선수는 디 스테파노다. 이 사람을 빼놓고는 전 세계 축구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디 스테파노는 17살이 되던 1943년에 아르헨티나의 명문 구단인 리버 플라테에 입단했다. 그곳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당시 아르헨티나의 축구계는 파업과 월드컵 불참으로 인해 문제가 많았다. 이에 이 아르헨티나 선수는 리버 플라테를 떠나 CA 우라칸과 CD 로스 미요나리오스 같은 팀에서 뛰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모든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한 디 스테파노는 1953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이때의 과정은 여전히 많은 논란을 낳고 있지만, 디 스테파노가 합류한 레알은 본격적인 전성기에 돌입했다.

 

1932/1933시즌을 끝으로 리그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레알은 디 스테파노의 맹활약에 힘입어 21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55/1956시즌에 제1회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한 레알은 해당 시즌을 포함해 5시즌 연속 우승했다.

 

통산 396경기에 출전해 308득점을 넣은 디 스테파노는 프란시스코 헨토와 레몽 코파, 엑토르 리알 등과 함께 레알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1957년과 1959년에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말 그대로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 그 자체였던 선수다.

 

그러나 유독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이 아르헨티나 선수는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국적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콜롬비아 국적까지 보유했지만, 단 한 번도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1946년에 예정된 월드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상황을 처리하느라 대회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때는 아르헨티나가 불참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디 스테파노는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어느 국적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대회 출전에는 아무 제약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FIFA가 규정을 개혁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디 스테파노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 출전하지 못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때 디 스테파노는 스페인으로 귀화했기에 스페인 대표팀 선수로 뛰고자 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962년 칠레 월드컵 당시 스페인 대표팀은 본선 무대에 진출했지만, 디 스테파노가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는 허리 부상으로 은퇴했다. 이처럼 디 스테파노는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선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선수다.

 

디 스테파노는 2014년 레알의 열 번째 챔스 우승을 지켜본 이후 삶을 마감했다. 이 아르헨티나 선수는 대표팀을 이끌고 역사를 쓰지 못했지만, 그 자신이 곧 ‘레알 마드리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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