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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 벵거의 지난 22년, 축구계의 강산은 어떻게 변했나: 유럽 편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아스널 FC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1996년부터 지금까지 22년 동안 팀을 이끌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벵거가 부임했을 당시와 현재 유럽 축구계의 강산은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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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리가

(1996년 당시)

라 리가는 1965/1966시즌에 레알 마드리드가 마지막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26년 동안 유러피언 컵 우승이 없었다. 해외 리그 팀들에 주도권을 내주다가 1991/1992시즌 FC 바르셀로나가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한 이후 예전의 명성을 찾아갔다.

(이후)

뛰어난 선수들이 하나둘씩 라 리가에 진출했다. 90년대 후반에는 전통 강호 레알이 유럽 무대를 호령했다. 금상첨화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발렌시아 CF 같은 팀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라 리가는 레알과 바르사에 의해 세계 최고의 리그가 됐다.

레알 마드리드

(1996년 당시)

레알은 80년대 후반 리그 5연패를 차지했을 정도로 강력한 팀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 바르사에 밀렸다. 설상가상 재정 악화로 막대한 부채를 떠안았다. 당시 레알의 회장이었던 라몬 멘도사는 이 문제로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1995/1996시즌은 리그 6위였다.

(이후)

재정적으로 힘들었지만, 라울 곤잘레스와 이케르 카시야스 같은 유소년 선수들이 등장했다. 1997/1998시즌과 1999/2000시즌에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2000년에 회장직에 당선된 플로렌티노 페레즈는 ‘갈락티코 정책’을 앞세우며 레알을 세계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FC 바르셀로나

(1996년 당시)

요한 크루이프 감독은 1988년 바르사에 부임했다. 내실을 다졌던 바르사는 90년대 들어서자 리그 5연패 중이던 레알의 독주를 저지했다. 그리고 1991/1992시즌에 구단 역사상 최초의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6년을 끝으로 크루이프가 떠났다.

(이후)

크루이프가 떠나자 바르사는 바비 롭슨과 루이스 판 할 등 수많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판 할은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같은 유소년 선수들을 기용했다. 이 두 선수는 2000년대 바르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챔스에서 아스널을 만나면 맹활약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6년 당시)

1995/1996시즌 아틀레티코는 발렌시아와 바르사를 제치고 19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아틀레티코에는 현 감독인 디에고 시메오네가 선수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아틀레티코의 유일한 슬픔은 그들의 유소년 선수였던 라울이 레알 선수로 맹활약한 것이다.

(이후)

1996년 이후 아틀레티코는 리그 우승과 거리가 먼 팀이 됐다. 급기야는 1999/2000시즌에 강등됐다. 그리고 2002/2003시즌이 돼서야 1부 리그로 복귀했다. 한때 아틀레티코는 레알한테 14년 동안 한 번도 못 이겼을 정도로 약했다. 그러나 시메오네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강해졌다.

발렌시아 CF

(1996년 당시)

발렌시아는 1995/1996시즌 아틀레티코와 리그 우승 경쟁을 다퉜다. 당시 발렌시아의 공격수였던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는 리그 28득점을 넣었을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리그 2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해당 시즌 직후 미야토비치는 레알로 이적했다. 팀의 핵심을 잃은 발렌시아는 2년 동안 그저 그런 성적을 냈지만, 1998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시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2008년 경영난에 빠지면서 팀의 핵심 선수들을 매각해야 했고 암흑기에 빠졌다.

세리에A

(1996년 당시)

1985년 헤이젤 참사로 잉글랜드 팀들이 약해지자 세리에A는 유럽 축구계의 왕이 됐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포함해 많은 자본가가 축구팀들을 인수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다. 내로라하는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세리에A로 왔다. 1996년은 세리에A의 황금기가 최절정에 이르렀다.

(이후)

세리에A의 전성기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06년 ‘칼치오 폴리’ 사건이 터진 이후 뛰어난 선수들이 해외 리그로 떠났다. 설상가상 경제 문제까지 겹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한때 화려했던 세리에A는 옛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AC 밀란

(1996년 당시)

베를루스코니는 1986년 밀란을 인수했다. 밀란은 베를루스코니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했고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보냈다. 1995/1996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밀란의 전성기는 계속됐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제가 약화했고 세대교체 시기를 놓치면서 전력이 노쇠해졌다. 설상가상 구단주인 베를루스코니는 스캔들에 시달렸다. 결국, 밀란은 2010년대 들어 급격하게 추락했다.

FC 인터 밀란

(1996년 당시)

1995/1996시즌 당시 인테르는 리그 7위에 그쳤다. 당시 세리에A는 인테르와 밀란을 포함해 유벤투스 FC와 SS 라치오, ACF 피오렌티나, AS 로마, 파르마 FC, 삼프도리아 등 무려 8개의 팀이 우승 경쟁을 다퉜을 정도로 치열했던 리그였다.

(이후)

인테르의 마시모 모라티 회장은 팀의 우승을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지만, 인테르는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2005/2006시즌에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리그 5연패를 차지했고 2009/2010시즌 때 트레블을 차지했다. 하지만 밀란처럼 세대교체 시기를 놓치며 암흑기에 빠졌다.

유벤투스 FC

(1996년 당시)

유벤투스는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체제에서 80년대 초반 황금기를 보냈다. 그러나 90년대 트라파토니의 유벤투스는 밀란에 밀려 번번이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새로 부임한 마르첼로 리피는 1994/1995시즌 리그 우승을, 이듬해 유벤투스의 마지막 챔스 우승을 안겨줬다.

(이후)

유벤투스는 챔스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1996년 이후 유벤투스는 총 5번의 챔스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유벤투스는 2006년 칼치오 폴리 사건에 연루되어 세리에B로 강등됐다가 1시즌 만에 복귀했다. 오랜 암흑기를 보냈지만, 2010년대 세리에A 6연패를 차지했다.

분데스리가

(1996년 당시)

분데스리가는 90년대 초반까지 유럽 최고의 리그 중 하나로 군림했다. 그러나 1990년 독일이 통일된 이후 경제 문제로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잃었다. 설상가상 서독과 동독 팀들의 편입 문제로 변화의 시기도 겪었다.

(이후)

세리에A는 여전히 강했고 라 리가의 팀인 레알은 유럽 무대를 호령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비롯한 프리미어 리그 팀들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반면, 분데스리가는 최악의 시기를 겪게 됐다. 분데스리가는 2000년대 중후반이 돼서야 옛 모습을 찾았다.

FC 바이에른 뮌헨

(1996년 당시)

바이에른은 90년대 들어 전력이 약화했다. 1990년대 중반에 바이에른 선수들은 형편없는 경기력과 그라운드 밖에서 소란을 자주 피우는 등, 스포츠지보다 촌평지에 등장하며 FC 할리우드 (FC Hollywood)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획득했다.

(이후)

오트마르 히츠펠트 감독 부임 이후 바이에른은 다시 강한 팀이 됐다. 바이에른은 2000/2001시즌에 챔스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분데스리가 자체가 암흑기였기에 바이에른 역시 영향을 받았다. 바이에른은 2009년 루이스 판 할 감독 이후 다시 유럽 무대를 호령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월드스포츠 로고, 로고스 위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