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골든 보이는 가장 뛰어난 유망주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마르카’와 ‘빌트’, ‘레퀴프’ 그리고 ‘더 타임스’ 같은 언론사들이 선정하는 이 상의 후보자는 반드시 21세 이하이며 유럽 상위 리그에서 뛰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상을 받은 선수들의 과거와 현재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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➀라파엘 판데르 파르트: 2003년 수상
(수상 이전)
17살의 나이에 AFC 아약스 암스테르담에 데뷔한 판데르 파르트는 ‘제2의 요한 크루이프’라는 찬사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무릎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했지만, 리그 21경기 동안 18득점을 기록해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많은 구단이 주목했던 이 네덜란드 선수는 2003년 첫 번째 골든 보이가 됐다.
(수상 이후)
이후 과체중을 비롯해 구설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국가대표 친선 경기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부상을 당해 기량이 하락했다. 2005년 함부르크 SV로 이적해 좋은 활약을 펼쳤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지만, 주전에서 밀렸다. 토트넘 홋스퍼 FC와 함부르크, 레알 베티스 같은 구단을 거쳤고 현재 덴마크의 FC 미트윌란에서 뛰고 있다.
➁웨인 루니: 2004년 수상
(수상 이전)
에버턴 FC의 유소년 선수인 루니는 2002년 만 16세의 나이로 1군에 데뷔했다. 얼마 후 아스널 FC의 무패 행진을 마감하는 역전 골을 넣어 화제를 모았다. 금상첨화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도 루니를 전격 발탁했다. 이 잉글랜드 공격수는 대회 4경기에 출전해 4득점을 기록했다. 2004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루니는 두 번째 골든 보이가 됐다.
(수상 이후)
루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맨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호날두는 레알로 떠났지만, 루니는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사생활과 자기 관리 문제로 비판받았고 급격한 노쇠화에 빠졌다. 결국, 2017년에 맨유를 떠나 친정팀 에버턴으로 복귀했다. 루니는 이번 시즌 38경기를 출전해 11득점 3도움을 기록 중이다.
➂리오넬 메시: 2005년 수상
(수상 이전)
메시는 2002년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했다.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여줬고 2005년에 1군에 정착했다. 그리고 U-20 월드컵에서 MVP와 득점왕을 차지해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다. 전 세계를 매료시킨 이 아르헨티나 선수는 3번째 골든 보이가 됐다. 참고로 이때 바르사 선수였던 호나우지뉴는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상’을 차지했다.
(수상 이후)
이후 메시는 주전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호나우지뉴가 바르사를 떠나자 그의 뒤를 이어 바르산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메시를 앞세운 바르사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경험했다. 이 아르헨티나 공격수는 4년 연속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단,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➃세스크 파브레가스: 2006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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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레가스는 메시와 함께 바르사 유소년 선수였다. 하지만 2003년 바르사를 떠나 아스널과 계약을 맺었다.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주전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2006년 유벤투스 FC의 파트리크 비에라를 상대로 맹활약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점을 높이 평가한 언론들은 이 스페인 미드필더에게 골든 보이의 명예를 안겨줬다.
(수상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파브레가스는 성장했지만, 아스널은 약해졌다. 특히,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르사만 만나면 무기력하게 패했다. 우승을 원했던 파브레가스는 주장이었음에도 바르사 복귀를 선택했다. 그러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했다. 공교롭게도 파브레가스가 이적한 팀은 친정팀 아스널이 아닌 첼시 FC였다.
➄세르히오 아구에로: 2007년 수상
(수상 이전)
아구에로는 2006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메시와 함께 ‘디에고 마라도나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07년 U-20 월드컵에서 MVP와 득점왕을 차지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은 이 아르헨티나 공격수는 다섯 번째 골든 보이의 주인이 됐다.
(수상 이후)
2011년 아틀레티코를 떠나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한 아구에로는 팀의 첫 번째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이끄는 결승 골을 넣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리그와 달리 유럽 대항전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특히, 국가대표팀에서 부진을 거듭했다. 2016년 코파 아메리카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지만, 번복했다.
➅안데르손 올리베이라: 2008년 수상
(수상 이전)
안데르손은 2007년 FC 포르투에서 맨유로 이적했다. 맨유는 안데르손이 당시 만 33살로 은퇴를 앞두고 있었던 폴 스콜스의 대체자가 되기를 바랐다. 이적 초반에 안데르손은 구단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 브라질 선수는 챔스 우승을 경험했고 새로운 골든 보이가 됐다.
(수상 이후)
그러나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성장이 정체됐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은퇴한 지 반년 후 ACF 피오렌티나로 임대를 떠났지만, 그곳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2015년 브라질 리그로 복귀했지만, 현재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승선했지만,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➆알렉산드레 파투: 2009년 수상
(수상 이전)
파투는 2006년 브라질의 SC 인테르나시오날에서 1군 데뷔를 했다. 데뷔전에서 출전한 지 1분 만에 데뷔 골을 넣은 파투는 2006 FIFA 클럽 월드컵에서 바르사를 꺾는 데 공헌했다. 그리고 2007 FIFA U-20 월드컵 등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AC 밀란으로 이적했다. 파투의 뛰어난 성장세를 높이 평가한 다수의 언론은 그에게 골든 보이를 안겨줬다.
(수상 이후)
그러나 파투는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사생활 문제를 지적받으며 이탈리아 언론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2013년 브라질 리그로 복귀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비판받았다. 이후 첼시와 비야레알 CF를 거쳐 현 소속 팀인 톈진 취안젠으로 이적했다. 톈진에서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➇마리오 발로텔리: 2010년 수상
(수상 이전)
발로텔리는 일찌감치 주목받은 재능이었다. 17살에 FC 인터 밀란으로 이적한 발로텔리는 이적 첫해 15경기에 출전해 7득점을 기록하며 기대를 모았다. 이후 뛰어난 성장세를 보여줬고 2010년에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맨시티로 떠난 발로텔리는 파투에 이어 여덟 번째 골든 보이가 됐다.
(수상 이후)
인테르 시절부터 악동 기질을 보여줬던 발로텔리는 맨시티에 입단한 이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행동했다. 발로텔리의 언행에 지친 맨시티는 2012년에 선수를 밀란에 매각했다. 이후 발로텔리는 부족한 실력으로 비판받았지만, OGC 니스에서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데 친정 팀 인테르와 밀란 복귀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