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프리미어 리그

[카드 뉴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아들이 여러 부분에서 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이다.

축구계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뛰어난 축구 선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구드욘센 부자(父子)처럼 부자가 같은 경기에 뛰었거나, 포를란 부자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사례도 있다. 이과인 부자처럼 포지션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축구계를 대표하는 부자는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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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촐라

발렌티노 마촐라는 어려서부터 운동에 소질을 보였지만, 11살 때 아버지를 여의자 공장에서 일하며 가정을 책임졌다. 그러나 결국에는 축구 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토리노 FC에 입단했고 엄청난 활약을 펼쳐 팀의 리그 5연패에 일조했다. (일 그란데 토리노) 하지만 1949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수페르가의 비극’ 사건)

발렌티노처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산드로 마촐라는 FC 인터 밀란의 전설인 주세페 메아차의 눈에 띄어 인테르에 입단했다. 아버지를 닮아 뛰어난 재능을 갖춘 산드로는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팀의 주전으로 도약했고 지아친토 파게티와 루이스 수아레즈 등과 함께 구단의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란데 인테르)

말디니

1953년 밀란에 입단한 체사레 말디니는 지아니 리베라와 함께 60년대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뛰어난 리베로였던 체사레는 1962/1963시즌 때 구단의 첫 번째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밀란과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았던 체사레는 2016년 작고했다.

아들인 파올로 말디니는 1978년 밀란 유스에 입단했고 16살 때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이듬해 주전으로 도약한 파올로는 아리고 사키와 파비오 카펠로 감독 밑에서 뛰어난 선수로 성장하며 구단의 두 번째 황금기를 이끌었다. 오직 밀란에서만 뛴 파올로는 챔스에서 통산 5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아들인 다니엘은 밀란 유소년 선수다.

산치스

수비수였던 마누엘 산치스는 1965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리고 프란시스코 헨토와 아마로 아만시오, 이그나시오 조코 등으로 구성된 ‘예예 군단’과 함께 구단의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했다. (레알은 대회명이 챔스로 개명된 이후 32년 만에 우승했다) 은퇴 이후 뚜렷한 지도자 경력을 쌓지 못하다가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인 마놀로 산치스는 13살 때 레알 유스에 입단했고 18살 때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빠르게 주전으로 발돋움한 마놀로는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미첼 곤잘레스 등과 함께 ‘라 퀸타 델 부이트레 군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마놀로는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와 첸도 등과 함께 레알에서만 뛴 ‘원 클럽 맨’이 됐고 가장 위대한 주장으로 평가받는다.

요렌테 가문

레알의 마르코스 요렌테는 최고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 그의 증조부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함께 구단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이끌었던 헨토고, 외할아버지인 라몬 그로소 역시 60년대 레알의 선수로 활약했다. 그의 아버지인 프란시스코 요렌테와 숙부인 훌리오 요렌테도 레알에서 선수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프란시스코와 훌리오는 가족들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당시 레알에는 미첼 곤잘레스와 라파엘 고르디요, 리카르도 갈레고 같은 좋은 선수들이 많았는데, 프란시스코는 이들과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해 대부분 백업 선수로 뛰었다. 훌리오는 첸도에게 밀렸고 구단을 떠났다.

부스케츠

14살 때 FC 바르셀로나 유스에 입단한 카를레스 부스케츠는 23살이 되던 1990년에 1군에 승격했다. 비록 구단의 첫 번째 챔스 우승을 경험했지만, 당시 주전이었던 안도니 수비사레타의 백업 골키퍼에 불과했기에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1999년에 팀을 떠나 UE 예이다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아들인 세르히오 부스케츠는 아버지와 달리 미드필더였다. 2005년 바르사 유스에 입단했고 2008년 1군 감독으로 부임한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 덕분에 승격됐다.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주전 선수로 입지를 다졌고 바르사 황금기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세르히오 역시 아버지처럼 챔스 우승을 경험했다.

램파드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는 15살 때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유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4년 후 1군에 승격해 데뷔전을 치렀다. 시니어는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웨스트햄에서 활동하며 구단의 전설로 등극했다. 은퇴 이후 웨스트햄 유소년 팀의 코치로 일하며 아들인 프랭크 램파드 주니어를 교육했다.

주니어는 삼촌인 해리 레드냅 감독의 지도 아래 17살 때 1군에 승격해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웨스트햄에 오래 남지 않았고 지역 라이벌인 첼시 FC로 팀을 옮겼다. 주니어는 그곳에서 존 테리와 함께 구단을 상징하는 선수로 도약했고 무려 13년이나 뛰었다. 그리고 작년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알론소

페리코 알론소는 1977년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했다. 그리고 알베르토 오르메차 감독 밑에서 헤수스 마리아 사트루스테귀와 함께 팀의 핵심 선수로 발돋움했다. 이들은 당시 라 리가를 독주하던 레알을 격파하고 구단 역사상 첫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후 페리코는 구단을 떠나 바르사로 이적했다.

사비 알론소는 17살에 소시에다드 유스로 입단했다. 1년 후 라 리가 데뷔전을 치렀고 조금씩 출전 기회를 쌓았다.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주전이 됐고 2002/2003시즌 때는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리버풀 FC로 이적해 자신의 첫 번째 챔스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2009년 바르사 선수였던 아버지와 달리 레알 선수가 됐다.

슈마이켈

피터 슈마이켈은 8살 때 지역 아마추어 축구 클럽인 회제-글라드삭스의 서브 골키퍼로 입단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했고 1987년 브뢴뷔 IF로 이적했다. 브뢴비를 이끌고 유로파 컵에서 맹활약한 피터는 199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했다. 그리고 ‘퍼기의 아이들’과 함께 구단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했다.

아들인 카스퍼 슈마이켈은 아버지와 늘 비교됐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여러 팀 임대를 전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2011년 2부 리그 팀인 레스터 시티 FC로 이적했다. 레스터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던 카스퍼는 2015/2016시즌 때 제이미 바디와 은골로 캉테, 리야드 마레즈 등과 함께 팀의 첫 번째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안겨줬다.

시메오네

디에고 시메오네는 1987년에 벨레스 사르스필드에 입단한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여줬다. 이후 AC 피사 1909와 세비야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같은 팀에서 뛰다가 FC 인터 밀란과 SS 라치오 같은 세리에A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에서 이름을 날렸다. 시메오네는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고 있다.

아들인 지오반니 시메오네는 아버지와 달리 공격수다. 13살 때 리버 플라테 유스에 입단한 지오반니는 유소년 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1군에 합류했고 이후 제노아 CFC로 이적했다. 제노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지오반니는 이듬해 AFC 피오렌티나로 팀을 옮겼다. 이번 시즌 리그 25경기에 출전해 7득점 4도움을 기록 중이다.

에르난데스

툴루즈 FC의 유소년 선수였던 장-프랑수아 에르난데스는 19살에 1군에 데뷔한 이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아틀레티코 같은 팀에서 뛰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가 로랑 블랑과 릴리앙 튀랑, 마르셀 드사이 같은 뛰어난 수비수들이 많았기에 국가대표팀과 거리가 멀었다.

장-프랑수아는 두 명의 아들을 뒀는데, 장남은 뤼카 에르난데스고 차남은 테오 에르난데스다. 두 형제는 아틀레티코 유스에 입단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차남인 테오는 라이벌인 레알 이적을 선택했다. 이번 시즌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젊기에 많은 기회를 얻을 듯하다. 장남인 뤼카는 이번 시즌 팀의 핵심 수비수가 됐다.

클루이베르트

AFC 아약스 암스테르담 유소년 선수였던 패트릭 클루이베르트는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18살의 나이에 1군에 데뷔했다. 데뷔한 첫 시즌 때 리그 득점왕과 챔스 우승을 차지하며 루이스 판 할 감독의 아약스를 상징하는 핵심 선수가 됐다. 이후 AC 밀란과 바르사, 발렌시아 CF 같은 명문 구단들에서 뛰다가 2008년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아들인 저스틴 클루이베르트는 최전방 공격수였던 아버지와 달리 윙어다. 아약스를 대표하는 유소년 선수로 많은 구단의 관심을 받고 있다. 얼마 전 선수 본인이 아버지가 뛰었던 바르사는 자신의 드림 클럽이지만, 레알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면서 자신의 미래는 아버지가 아닌 자기 자신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