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거의 불합리한 ‘합리적 운영’

[풋볼 트라이브=최유진 기자] 아스널 FC가 심상찮다. 지난 시즌에는 리그 5위를 기록하며 98/99 시즌부터 계속됐던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에이스인 메수트 외질, 알렉시스 산체스 같은 선수는 모두 팀을 떠나려고 하거나 이미 떠났다. 심지어 17/18 시즌 현재도 리그에서 5위를 하고 있다.

 

팀은 언제 부진에 빠질까. 선수가 노쇠해서, 영입을 제대로 못 해서, 전술이 부실해서, 믿었던 선수가 크게 부상을 당해서, 감독과 선수 사이에 불화가 생겨서. 사실 한 가지 이유로 정의내릴 수는 없다. 잘하던 축구팀이 축구를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널의 슬럼프는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사실 아스널은 제법 오랫동안 잘한다는 평가를 듣지 못했다. 최근 EPL의 유력한 우승 후보는 누구일까? 챔피언스 리그 우승 후보는? 아스널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4위/16강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아스널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잘하지는 않는 팀이었다.

 

그럼 또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건설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새 구장을 만들며 돈을 아껴야 했고, 그 결과 선수단이 약해졌다는 말이다. 맞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새로운 구장을 지으면서도 팀의 재정을 온전하게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아스날과 벵거는 해냈다. 그러니까, 한 5년 전에 말이다. 아스널이 새 구장을 짓는 데 쓴 빚을 갚으면서도 흑자 상황을 만들어낸 지 이미 한참이다. 더 이상 구장 핑계를 댈 상황이 아니다. 외질을 EPL 역대 2위 금액으로 영입했던 것이 어느덧 5년 전 일이다. 구단 매출은 20년 사이 10배 이상 뛰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다는 결정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런 점에서 벵거는 늘 합리적이었다. 항상 손익을 염두에 두고 팀을 운영했다. 2009년 겨울, 마티유 플라미니의 공백과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부상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어려워지자, 벵거는 평소의 원칙을 깨고 1,500만 파운드(약 273억원)를 들여 안드레이 아르샤빈을 영입했다. 당시 구단의 역대 최고 이적료였다. 벵거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아스널은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의 추격을 제치고 프리미어 리그 빅 4라는 명성을 굳건히 지키는 데 성공했다. 벵거의 아스널은 이렇게 보면 참 합리적인 구단인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합리성은 단기적인 이득을 가져다줄 뿐이다. 벵거는 거액의 이적료 지출을 매우 꺼린다. 그만큼의 이득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유럽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거액을 지출하는 것은 막대한 손해라는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는 데 필요한 금액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 상금을 비교하면, 전자가 압도적이니 말이다.

 

그러나 4위/16강이라는 마지노선은 아스널의 가치를 꾸준히 떨어뜨리고 있었다. 우승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닌 팀에 흥미를 느끼는 선수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선수의 영입과 유지, 이적은 구단 운영비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걷잡을 수 없이 오르는 선수 이적료는 이제 하나의 큰 가치가 되었다. 하지만 아스널은 선수를 비싸게 파는 데에는 재주가 없었다. 아니, 비싸게 팔 수가 없었다. 우승보다는 재정 건전성에 중점을 두고 팀을 운영하니 선수들에게 매력 없는 구단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티에리 앙리, 지우베르투 시우바,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판페르시 같은 핵심 선수들은 주장이었는데도 아스널을 버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벵거가 좋아하는 유망주도 마찬가지다. 벵거의 아이들로 불리는 가성비 좋은 유망주들은 아예 성공하지 못하거나, 성공하면 팀을 떠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밟고 있다. 그냥 떠나는 것도 아니다. 늘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적해버린다. 이렇게 떠나버린 선수를 메꾸는 데 드는 비용이 아낀 비용보다 더 많다는 것을 벵거는 왜 몰랐을까. 아스널은 비싸게 영입하지도, 비싸게 팔지도 못하면서 정체되고 있었다.

 

비싸다는 이유로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곤살로 이과인이 대표적 예다. 2013년 여름, 벵거는 이과인의 이적료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보다 높다는 이유로 이미 개인 합의에 도달했음에도 거래를 중단했다. 결국 이과인은 3,900만 유로(약 481억 원)에 SSC 나폴리로 이적했고, 이후 세리에 A 단일 시즌 역대 득점 1위에 오르는 등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 활약에 유벤투스는 이과인을 9,000만 유로(약 1,125억 원)에 영입했다.

 

나폴리는 3시즌 간 잘 써먹고도 2배 이상의 차익을 남겼는데, 이과인 영입에 가장 가까웠던 팀이 아스널인 것을 고려하면 ‘벵거의 합리적 결정’은 사실 합리적이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벵거는 아끼기만 하는 대신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팀의 가치를 끌어올려야만 했다. 선수를 잘 데려오고 잘 떠나보내는 것이 부유하면서도 ‘잘하는’ 팀을 만든다는 그 당연한 원리를 깨달아야만 했다. 그러나 벵거는 ‘합리적’으로 선택했고, 이는 미시적인 이득만을 가져왔다.

 

물론 벵거는 신이 아니다. 모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사이 아스널은 챔피언스 리그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ㄱ렇다면 지금 벵거는 이를 뒤집을 수 있도록 팀을 개혁하고 있나? 그렇지도 않다. 현재 아스널은 승점 19점(5위)으로 여전히 유로파 진출권을 맴돌고 있다. 심지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토트넘 홋스퍼 3강은 아직 만나지도 않았다.

 

벵거가 축구 감독으로서뿐 아니라 팀의 재정 관리자로서도 역량 부족이라는 것을 아스널은 알아야 한다. 벵거는 아스널에 부임할 때, ‘클럽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최고 수준에 머물러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벵거는 결국 장사할 줄 모르는 ‘짠돌이’의 면모를 버리지 못했다. 반면 같은 시기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벵거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낭비’를 하면서도 재정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내고야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벵거는 언제까지 아스널을 ‘합리적’으로만 운영할 것인가.

 

[사진 출처=아스널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