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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레알 마드리드, 스포츠 전설로의 방향을 제시하다

[풋볼 트라이브=정미현 기자] 최근 레알 마드리드의 부진으로 축구계가 술렁이고 있다. 이번 여름, 챔피언스 리그 2연패를 달성했을 때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축구 팬들은 지금이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황금기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역대급 팀이라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8월에 열린 수페르코파에서 FC 바르셀로나를 대파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두 달, 역대급이란 표현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레알은 깊고 깊은 슬럼프에 빠진 듯했다. 약팀을 상대로 답답한 모습만을 보여줬으니 현재까지 기록한 6승 2무 2패, 리그 승률 60%도 당연한 결과다.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지네딘 지단 감독이 경기를 보수적으로 운영해서? 에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부진 탓에? 알바로 모라타 등 전문 스트라이커의 부재 때문에? 혹은 동기 부여의 문제?

 

모두 틀렸다. 애초에 레알은 슬럼프에 빠지지조차 않았다. 더 위대한 구단으로 진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30일 새벽 (한국 시각) 열린 지로나와의 경기가 그 증거다.

 

이른바 “헬 사회”, “노오력”조차 하지 않는 페레스 레알 회장에게 선수들이 보내는 메시지

 

문화일보의 김성호 논설위원은 보이콧 운동을 항의의 수단으로 행하는 “불매, 배척, 제재, 절교”라 정의했다. 노골적인 무시만큼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태도는 없다. 당연히 보이콧 운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 효과적이다. 실제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은 인종 차별 폐지의 시발점이 되었다.

 

레알의 선수들도 같은 전략을 쓰지 않았을까.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이적 시장 행보는 명성답지 않은 데가 있다. 호날두 부재 시 득점에 있어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선수, 알바로 모라타는 첼시로 떠났다. 모라타의 대체자? 이름조차 생소한 보르하 마요랄이다. 그 외에는 헤수스 바예호, 마르코스 요렌테, 테오 에르난데스, 그리고 다니 세바요스, 이 네 선수가 스쿼드에 새로 등록됐다. 사람에게 값을 매긴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감히 말하자면 다섯 모두를 한꺼번에 팔아도 그 돈으로는 폴 포그바의 귀 한 쪽도 못 살 테다.

 

리그앙의 파리 생제르망은 역대급 이적료를 지출, 현세대는 물론 차세대까지 아우르는 에이스, 네이마르와 킬리앙 음바페를 데려왔다. 이 음바페는 호날두의 소셜 미디어를 좋아요로 도배한, 이른바 근본이 레알인 선수다. 그런데도 레알은 음바페 영입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적 시장의 초인플레이션이 과하다고는 하지만, 선수들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레알 마드리드가 가진 장점이 드러난다. 선수들이 그만큼 구단에 소속감을 느끼고, 이 상황에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직장인의 대부분은 월급만 잘 나온다면 회사 운영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두지 않을 테다. 어차피 상여금 좀 포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달랐다. 문제를 인식했을 뿐 아니라,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보이콧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많지 않다.

 

그래서 선수들은 경기력 그 자체를 보이콧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에게 이른바 빅 사이닝을 요구하기 위해. 후폭풍을 분명 인지하고 있었을 텐데도.

 

선수들의 이 위대한 책임감과 희생정신, 전설로 길이길이 남을 스포츠팀의 시작이다.

 

일관성은 팬들을 웃게 만든다, 공돈이라도 얻은 것처럼.

 

팀에는 선수만큼 중요한 이가 있다. 선수들을 밥 먹여주는 자, 바로 팬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챙겨보는 팬이라면 팀의 한결같은 경기력을 익히 알고 있을 테다. 실제로 이번 시즌 레알은 약팀을 상대로 늘, 꾸준히, 지속적으로 못했다. 들쑥날쑥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희망고문하느니 그야말로 쭉 못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레알의 팬이라면 지로나 전에서의 패배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을 테다.

 

이 일관성을 만약 프로토 등 (합법적인) 체육 복권에 이용했다면? 대다수가 팀 이름에 혹해 레알의 승을 점칠 때 패에 배팅했다면?

 

진정한 팀은 열두 번째 선수, 팬에게 고마움을 표할 줄 안다. 레알은 이미 이를 뛰어넘었다. 팬들의 재정 상황까지 배려해주다니, 이런 팀이 또 어디 있나. 팬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그 마음씨, 전설로 나아가는 데 필수 요소다.

 

오른쪽 뺨을 맞거든 왼쪽 뺨도 내밀어라

 

마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대어라”고 일렀다.

 

진정한 구단은 팬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지지자를 챙기는 것쯤이야 어느 팀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을 배려한다? 쉽지 않다.

 

최근 카탈루냐 자치지방이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치권 박탈안을 가결했다. 독립에 찬성한 카탈루냐인이 이런 조치에 반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시기, 레알은 카탈루냐를 연고지로 하는 지로나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카탈루냐는 반(反) 중앙정부 및 카스티야 지방으로 유명하다. 지로나의 팬들이라고 마드리드가 고까울 리 없다. 그리고 레알은 바로 그 마드리드와 중앙 정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리고 레알은 자신들의 적, 지로나에, 카탈루냐에 골을 선물했다. 동점골뿐 아니라 역전골까지.

 

떠나려는 연인에게 무언가를 선물한 이가 몇이나 있는가. 헤어진 전 애인에게 새벽 두시, 자니? 하는 문자를 제외하면 무언가를 준 적이 있기는 한가. 레알은 달랐다. 떠나는 그 와중에도 관대했고, 사려 깊었다. 바다와도 같은 그 마음씨를 어느 누가 알아주나.

 

내가 알았다. 그래서 말한다.

 

선수들이 하나하나 소속감을 느끼고, 책임을 다하는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 돈 벌 기회를 주는 레알 마드리드.

오른쪽 뺨을 맞았기에 왼쪽 뺨까지 갖다 대었던 레알 마드리드.

 

이런 레알을 대체 왜 비판하는가. 우리가 어디서 또 이런 완벽한 팀을 찾는다고? 레알 함부로 욕하지 마라. 당신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나.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