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세리에 A

부친의 죽음을 극복하고 최고의 선수가 된 마촐라

발렌티노 마촐라(좌)와 산드로 마촐라(우)

위대한 아버지, 그리고 인생을 바꾼 비극

 

마촐라는 1942년 11월 11일, 토리노의 선수였던 발렌티노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늘날 세리에A 최고의 명문 구단을 뽑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유벤투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1940년대 세리에 A 최강의 팀은 유벤투스가 아닌 토리노였다.

 

당시 토리노 선수단은 마촐라의 아버지인 발렌티노를 포함해 대부분의 선수가 이탈리아 대표팀이었다. 발렌티노를 앞세운 토리노는 정말 강력한 팀이었다. 이 시기의 토리노를 많은 사람이 ‘그란데 토리노’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도 그란데 토리노는 세리에 A 역대 최강의 팀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된다.

 

그중에서도 발렌티노는 토리노와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였다. 뛰어난 기술력과 엄청난 체력, 그리고 주력을 앞세운 발렌티노는 마리오 리가몬티가 “발렌티노가 팀의 절반이다. 남은 절반은 우리 10명에 의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위대한 선수였다.

 

하지만 발렌티노의 결혼 생활을 선수 생활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1947년에 이혼한 발렌티노는 장남인 마촐라의 양육권을 얻었다. 발렌티노의 밑에서 자란 산드로는 아버지의 플레이를 보면서 성장했다. 아버지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는 발렌티노처럼 축구 선수의 길을 걷고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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