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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특집] 스승의 은혜 못잖게 큰 감독의 은혜: 바르사 편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스승의 날’은 사람들이 은사를 기리는 날이다. 이날 많은 사람이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을 방문해 인사를 드리거나, 학창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축구도 마찬가지. ‘감독의 날’은 없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감독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떤 감독들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을까. 혹은 팀의 미래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까. 구단의 위상을 높였거나 발전을 이끈 감독들을 살펴보자.

요한 크루이프

선수 시절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크루이프는 1973년부터 1978년까지 바르사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1988년 바르사 지휘봉을 잡았다.

크루이프 부임 당시 바르사는 지금처럼 강팀이 아니었다. 리그에서는 ‘라 퀸타 델 부이트레 군단’을 앞세운 레알 마드리드에 밀리고 있었다.

크루이프는 자신의 철학을 바르사에 이식함과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영입해 팀을 차근차근 정비했다. 또한, 유소년 팀에서 뛰고 있는 호셉 과르디올라를 1군에 승격시켰다.

오랜 기다림 끝에 크루이프의 바르사는 기어이 성과를 냈다. 바르사는 리그 4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1991/1992시즌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삼프도리아를 격파하고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크루이프는 당시 회장이었던 누녜스와 갈등했고 1995/1996시즌을 끝으로 바르사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크루이프는 카탈루냐 대표팀을 제외하고는 두 번 다시 감독을 맡지 않았다.

크루이프가 바르사에 심은 철학은 거대했다. 그가 정비한 유소년 시스템인 ‘라 마시아’는 구단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루이스 판 할

판 할은 AFC 아약스에서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크루이프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판 할은 1997년 바비 롭슨 감독을 대신해 바르사 지휘봉을 잡았다.

이 네덜란드 감독은 부임 첫해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레알과의 승점 차이는 11점이나 났다. 무엇보다 두 번의 엘 클라시코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판 할은 직설적이고 엄격한 성격이었기에 히바우두를 비롯한 일부 선수들과 자주 대립했다. 카탈루냐 언론들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결국, 판 할은 2000년에 팀을 떠났다. 2002년에 복귀했지만, 1년도 안 돼서 경질됐다.

냉정히 말해서 판 할 시절의 바르사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거대했다.

이 시기에 카를레스 푸욜과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 바르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유소년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과르디올라도 판 할의 전술적 영향을 받았다.

이는 훗날 바르사가 세계 최강의 팀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만약 판 할이 없었다면, 지금의 바르사는 상당히 다른 팀이 됐을 듯하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레이카르트는 2003년 바르사 감독이 됐다. 선수 시절 레이카르트는 바르사에서 뛰지 않았으며 부임 당시 그의 지도력에는 많은 의문 부호가 따랐다. 설상가상 그때 바르사는 성적 부진과 회장 교체 문제 등으로 인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레이카르트는 차근차근 팀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2004/2005시즌부터 두 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5/2006시즌에는 아스널 FC를 꺾고 챔스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다. 레이카르트는 선수에 이어 감독으로서 우승을 경험한 인물 중 한 명이 됐다.

하지만 레이카르트의 바르사는 이듬해부터 무너졌다. 바르사는 레알에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내줬고 챔스 우승에도 실패했다.

또한, 그 시절 바르사는 호나우지뉴를 비롯한 베테랑 선수들이 경기 외적으로 논란을 빚으면서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됐다. 결국, 분위기 쇄신을 원했던 바르사는 2008년에 레이카르트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비록 결말은 좋지 못했지만, 레이카르트가 없었다면 오늘날 바르사는 없었을 것이다. 어찌 됐든 이 네덜란드 감독은 팀을 잘 추슬렀다. 무엇보다 리오넬 메시를 1군에 데뷔시켰다.

호셉 과르디올라

과르디올라는 바르사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 2001년에 바르사를 떠난 이 스페인 감독은 2007년 바르셀로나 B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바르사에 복귀했다. 바르사 B팀에서 엄청난 성적을 보여줬던 과르디올라는 1년 후 1군 감독으로 부임했다.

빠르게 팀을 정비한 과르디올라는 부임 첫해 라 리가 구단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그리고 3개의 트로피를 더 들어 올리며 전무후무한 6관왕을 차지했다.

또한, 메시는 과르디올라의 지도력 아래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과르디올라 시절 바르사는 역대 최강의 팀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기 바르사는 레알에 강했다. 레알의 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6:2로 승리한 바르사는 1년 후 캄프 누에서 5:0으로 승리했다.

레알은 바르사를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다른 라 리가 팀들 역시 바르사의 장점을 흡수하며 성장했다. 과르디올라의 바르사는 세계 최강의 팀을 넘어 전 세계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팀이었다.

그러나 동기 부여 문제를 비롯해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지친 과르디올라는 2011/2012시즌을 끝으로 바르사를 떠났다.

루이스 엔리케

선수 시절 엔리케는 1991년 스포르팅 히혼에서 레알로 이적했다. 그러나 1996년 레알과 재계약에 실패하자 바르사에 입단했다. 이후 엔리케는 바르사의 주장이 됐다.

2004년 바르사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엔리케는 2014년에 1군 사령탑에 취임했다. 당시 바르사는 챔스와 리그에서 레알과 아틀레티코에 밀려 우승을 놓쳤다.

그러나 엔리케는 부임 첫해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했다. 그다음 해는 더블을 차지했다. 마지막 임기에는 그 유명한 ‘캄프 누 기적’을 일으켰고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물론, 엔리케는 전술적인 부분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임기 내내 MSN 라인에 의존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엔리케의 바르사가 없었다면, 라 리가는 레알의 독주 체제로 흐름이 넘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트레블을 이끈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바르사 감독직에서 사임한 엔리케는 무직이다. 현재 첼시 FC와 아스널 등 다양한 구단과 연결되고 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