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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데이 특집] 꼴도 보기 싫은 놈들 (ft. 유벤투스)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사람들은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주기 싫을 만큼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 생각하기도 싫은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잦은 부상이나 기대 이하의 모습을 펼쳐 비판받았다. 혹은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해 팬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에 풋볼 트라이브 코리아가 블랙데이를 기념해 ‘블랙데이 특집’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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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앙리

앙리는 프랑스와 아스널 FC의 전설이다. 그러나 이 프랑스 공격수의 머릿속에서 유벤투스 FC 시절은 지워버리고 싶을 듯하다.

앙리는 1999년 AS 모나코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당시 유벤투스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앙리를 윙어로 기용했을 뿐 스트라이커로 쓰지 않았다.

유벤투스에서 반 시즌을 뛰며 19경기 동안 3득점에 그쳤던 앙리는 이적한 지 반년 만에 아르센 벵거 감독의 아스널로 이적했다.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와 아스널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에드윈 판 데 사르

AFC 아약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판 데 사르였지만, 유벤투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1999년 유벤투스에 입단한 판 데 사르는 안첼로티의 전술에 적응하지 못했고 종종 실책을 범해 신뢰를 잃었다.

결국, 2001년 파르마 FC에서 이름을 날렸던 잔루이지 부폰이 영입되자 풀럼 FC로 매각됐다.

풀럼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명예회복에 성공한 판 데 사르는 이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유로 이적했다. 그곳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자신이 세계 최고의 골키퍼임을 증명했다.

마르셀로 살라스

살라스는 이반 사모라노와 함께 칠레를 대표하는 공격수였다. 2001년 SS 라치오를 떠나 유벤투스에 입단한 살라스는 이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듬해 명예 회복을 노렸지만, 또다시 부상을 당해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살라스는 2시즌 동안 27경기에 출전해 4득점을 넣는 데 그쳤다.

결국, 2003년 아르헨티나의 명문 팀인 리버 플라테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부상으로 고통받았다.

2005년 조국 칠레로 복귀한 살라스는 2008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후안 에스나이데르

에스나이데르는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뛴 아르헨티나 공격수다. 라 리가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던 에스나이데르는 1999년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당시 유벤투스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기에 에스나이데르로 델 피에로의 공백을 메우고자 했다. 그러나 에스나이데르는 구단에 정착하지 못했고 16경기에 출전해 0득점에 그쳤다.

결국, 이적한 지 반 년만에 유벤투스를 떠났다.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한 에스나이데르는 2005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일본의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의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엘예로 엘리아

17살의 나이에 1군에 데뷔한 엘리아는 에레디비시와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기대를 모았다. 일각에서는 이 선수를 “검은 아르연 로번”이라고 표현했다.

2011년 유벤투스는 엘리아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이 네덜란드 선수를 영입하고자 했지만, 선수 본인은 “유벤투스는 이탈리아의 빅 클럽 중 하나지만, 내 생각에 함부르크 SV보다 좋지 않다”며 유벤투스로 이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얼마 후 엘리아는 자신의 말과 달리 유벤투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유벤투스에서 보여준 활약을 처참했고 이적한 지 1년 만에 팀을 떠나 비웃음을 샀다.

크리스티안 폴센

폴센은 토마스 그라베센과 함께 ‘그라운드 위의 미친개’라는 소리를 들었던 덴마크 선수다. 폭넓은 활동량과 적극적인 몸싸움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2008년 유벤투스로 이적한 이후에는 부정확한 패스 남발로 경기의 흐름을 끊어 먹기 일쑤였고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했다. 최종적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결국, 2010년 유벤투스를 떠나 리버풀 FC로 이적했다. 폴센은 리버풀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1년 만에 방출됐다.

2015년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밀로스 크라시치

CSKA 모스크바와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크라시치는 월드컵 이후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이적 초기에 유벤투스의 전설인 파벨 네드베드처럼 금발의 윙어였기에 ‘제2의 네드베드’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리에A 수비수들이 크라시치의 단조로운 경기 패턴을 파악하자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2012년 쫓겨나다시피 페네르바체 SK로 이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자리를 잡는 데 실패했다. 현재 폴란드 리그의 레히아 그단스크에서 뛰고 있다.

펠리페 멜루

ACF 피오렌티나 시절 멜루는 엄청난 활약을 펼쳐 여러 팀의 구애를 받았다. 특히, 아스널이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막판에 아스널보다 더 좋은 금전적 조건을 제시해 2009년 멜루를 영입했다.

그러나 멜루는 기대 이하의 활약과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자멸했다. 그리고 최악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비도네 도로’를 수상했다.

이후 유벤투스를 떠나 갈라타사라이 SK와 FC 인터 밀란에서 뛰었고 현재 브라질의 SE 파우메이라스 선수로 활동 중이다.

니클라스 벤트너

한때 ‘덴마크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라고 불렸던 벤트너는 아스널에서 자리 잡지 못하자 2012년 유벤투스로 임대를 왔다.

입단하자마자 벤트너는 구단에 유벤투스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등 번호 10번을 요구했을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장기 부상과 저조한 경기력으로 11경기 밖에 나오지 못했고 득점도 없었다. 결국, 완전 이적에 실패했다.

여담으로 벤트너의 유벤투스 유니폼은 3월까지 단 한 개도 팔리지 못했는데, 한 사람이 구매하자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아마우리

US 팔레르모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아마우리는 2008년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이적 초기만 해도 아마우리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심지어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이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를 선발했다.

그러나 2009년 2월부터 급격한 부진에 빠졌고 급기야는 약 7개월 동안 득점이 없었다.

아마우리가 계속 득점에 실패하자 유벤투스의 암흑기는 더욱 길어졌다. 결국, 2011년 파르마로 임대됐다. 그곳에서 11경기 동안 7득점을 기록해 부활했다.

이후 여러 구단을 떠돌았던 아마우리는 현재 무직이다.

레오나르도 보누치

2010년 유벤투스에 입단한 보누치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 체제에서 조르지오 키엘리니와 안드레아 바르찰리 등과 함께 철벽 수비진을 구성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성장했다.

유벤투스는 강력한 수비진을 바탕으로 2015년과 2017년에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두 번 모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시즌 종료 이후 보누치는 유벤투스를 떠나기를 희망했고 AC 밀란으로 이적해 많은 이의 비판을 받았다.

보누치는 이적 초기에 부진을 거듭해 '먹튀' 논란에 시달렸지만,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