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프리미어 리그

[블랙데이 특집] 꼴도 보기 싫은 놈들 (ft. 바르사)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사람들은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주기 싫을 만큼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 생각하기도 싫은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잦은 부상이나 기대 이하의 모습을 펼쳐 비판받았다. 혹은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해 팬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에 풋볼 트라이브 코리아가 블랙데이를 기념해 ‘블랙데이 특집’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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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로 치그린스키

FC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중앙 수비수 치크린스키는 2009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영입 당시만 해도 치그린스키가 바르사의 철학에 잘 맞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우크라이나 수비수는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바르사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치그린스키는 이적한 지 불과 1시즌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복귀 이후 “나는 내 기량이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고 산드로 로셀 회장이 실수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이후 샤흐타르를 떠나 FC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와 AEK 아테네 등지에서 뛰었다.

알렉산더 흘렙

흘렙은 아스널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바르사와 레알 마드리드, FC 인터 밀란 같은 명문 구단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레알과 인테르가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선수의 선택은 바르사였다.

그러나 바르사 이적은 이 벨라루스의 미드필더에게 재앙이었다. 한창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었던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같은 선수들과의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패했다.

결국, 치크린스키처럼 1시즌 만에 바르사를 떠났다. 이후 흘렙은 “아스널을 떠난 걸 후회한다. 유럽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팀에서 매주 경기를 뛸 수 있었고 아르센 벵거는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하비에르 사비올라

한때 사비올라는 ‘제2의 디에고 마라도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재능이었다. 2001년 바르사로 이적한 이 아르헨티나 공격수는 이적하자마자 큰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3시즌 동안 리그 평균 15득점을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사비올라의 입지는 늘 위협받았다. 결국, 2004년 세비야 FC로 임대를 떠났다. 2006년 복귀했지만, 그때는 리오넬 메시가 주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사비올라는 바르사의 최대 라이벌인 레알로 이적했다. 사비는 “라이벌 팀의 선수로서 사비올라가 잘되길 바라지 않는다. 단지 친구로서 사비올라가 잘됐으면 한다”며 씁쓸한 심경을 밝혔다.

마르틴 카세레스

카세레스는 2008년 비야레알 CF에서 바르사로 이적했다. 그러나 전술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팀의 4번째 센터백으로 전락했다. 설상가상 부상까지 겹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이적한 지 1년 만에 바르사를 떠났다.

카세레스가 앞서 언급한 선수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바르사를 비판했거나, 사비올라처럼 레알로 이적하지는 않았다.

바르사를 떠난 이 우루과이 수비수는 이후 유벤투스 FC와 세비야 FC, SS 라치오 같은 명문 구단에서 뛰며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케이리손

브라질 리그의 SE 파우메이라스 소속이었던 케이리손은 한때 ‘제2의 호마리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갖췄던 유망주였다. 이에 바르사는 2009년 거액을 주고 이 브라질 선수를 영입했다.

하지만 케이리손은 바르사 소속으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SL 벤피카와 ACF 피오렌티나에서 임대 생활을 보냈다가 2010년 산투스 FC로 이적했다.

브라질 리그로 복귀했지만, 산투스에서도 자리 잡지 못했다. 이후 크루제이루 EC와 코리치바 FC 같은 팀에서 뛰었지만, 주전과 거리가 멀었다.

엠마뉴엘 프티

지네딘 지단과 디디에 데샹 등과 함께 프랑스 축구의 황금기를 열었던 프티는 2000년 마크 오베르마스와 함께 아스널에서 바르사로 이적했다.

그러나 당시 바르사 감독이었던 로렌조 세라 페라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선수 본인이 잉글랜드 무대 복귀를 원했기에 1년 만에 첼시 FC로 이적했다.

프티는 첼시에서 프랭크 램파드와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무릎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했다. 설상가상 2003년 클로드 마켈렐레가 영입되자 1년 후 방출됐다.

결국, 2005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제오반니

크루제이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제오반니는 유벤투스와 아스널 같은 명문 구단의 제안을 거절하고 바르사를 선택했다. 바르사는 당시 히바우두를 비롯한 브라질 선수들로 재미를 보고 있었기에 제오반니도 성공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제오반니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고 2003년 SL 벤피카로 팀을 옮겼다. 이후 친정팀인 크루제이루로 복귀했다.

2007년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해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한 제오반니는 ‘저니맨’ 신세를 피할 수 없었고 2013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베른트 슈스터

슈스터는 1980년 FC 쾰른에서 바르사로 이적했다. 이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1986/1987시즌을 부상으로 통째로 날렸다. 이때 슈스터는 구단에서 제대로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면서 불만을 표했다.

결국, 1988년 바르사의 최대 라이벌인 레알로 이적했다. 슈스터는 당시 바르사의 핵심 선수였기에 이 이적은 엄청난 파문이었다.

레알에서 2시즌을 뛴 슈스터는 지역 라이벌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팀을 옮겼다.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1997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8년 레알의 감독으로 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미카엘 라우드롭

라우드롭은 1989년 유벤투스에서 바르사로 이적했다. 이 데만크 선수는 요한 크루이프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바르사는 라우드롭을 앞세워 4년 연속 라 리가 우승에 성공했고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해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993/1994시즌 챔스 결승전에서 출전하지 못해 크루이프와 갈등했다. 설상가상 바르사가 AC 밀란에 0:4로 패한 이후 대대적인 팀 개편에 착수하자 선수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결국, 라우드롭은 바르사에 복수하기 위해 레알로 이적했다.

루이스 미야

바르사의 유소년 선수 출신이었던 미야는 1984년 1군에 데뷔했다. 그러나 당시 바르사 경영진과 계약 문제로 다퉜고 크루이프와 갈등했다. 결국, 자유계약 신분으로 최대 라이벌인 레알과 계약을 맺었다.

이후 미야는 7시즌 동안 레알에서 뛰며 두 번의 라 리가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친정 팀 바르사는 미야가 있을 때보다 더 잘 나갔다.

참고로 미야가 레알을 떠나자 크루이프는 유소년 팀에서 한 선수를 1군에 승격시켰다. 그 유소년 선수가 바로 과르디올라다.

루이스 피구

스포르팅 CP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피구는 원래 세리에A 이적을 원했다. 그러나 선수와 에이전트가 각각 유벤투스와 파르마 FC와 이중 계약을 맺는 바람에 2년간 세리에A 이적이 금지됐다. 피구의 선택은 바르사였다.

바르사에서 피구는 히바우두와 호나우두 등과 함께 뛰어난 활약을 펼쳐 2시즌 연속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너무나 뛰어난 활약을 펼쳤기에 피구는 바르사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주급 문제로 경영진과 갈등했다. 결국, 피구는 역대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레알로 이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챔스 우승을 경험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인도네시아 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