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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즈만의 딜레마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2008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는 자신들만의 천하를 만들었다. 이에 수많은 선수가 새로운 천하를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그리즈만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지난 2014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 그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FC 바르셀로나와 FC 바이에른 뮌헨 같은 팀들을 격파하며 새로운 천하의 주인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와 호날두의 야성을 넘지 못했다.

 

비록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그리즈만의 기량을 높게 평가하며 네이마르와 함께 차기 발롱도르 후보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다르다. 아틀레티코와 프랑스 국가 대표 팀에서 부진해지자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리즈만을 비판하는 것일까? 단순히 이번 시즌 부진 때문에? 그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되겠지만, 전부가 될 수 없다. 그에 대한 비판은 유로 2016 이후 제기됐기 때문이다.

 

전술적 제약

 

그리즈만은 뛰어난 선수지만, 전술적으로 제약이 많다.

 

오늘날의 선수들은 다재다능하다. 흔히 말하는 ‘육각형’ 형태의 선수들이 많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즈만은 육각형에 가까운 공격수다. 폭넓은 활동량과 적극적인 수비가담, 그리고 역습 상황 시 침투에 능하다. 여기에 볼 운반과 플레이 메이킹 능력도 충분히 갖췄다.

 

하지만 최고의 공격수라면 가져야 할 점들이 여러모로 미숙하다. 호날두처럼 빼어난 신체조건을 가지지 못했고, 메시나 네이마르처럼 뛰어난 드리블이나 플레이 메이킹 실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카림 벤제마처럼 포스트플레이에 능한 것도 아니다. 특히, 최전방이나 측면에 배치되면 파괴력이 떨어진다.

 

그리즈만의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넓고 자유롭게 써야만 한다. 이에 대표팀의 디디에 데샹 감독은 4-2-3-1 포메이션 시스템을, 아틀레티코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4-4-2 포메이션 시스템을 바탕으로 그리즈만에게 넓은 공간과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여러 선수와 동선이 겹치거나 다른 선수들이 선호하는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그가 동료들의 장점을 죽인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많은 이들이 유로 2016 때 그리즈만이 보여준 활약을 언급하지만, 정작 프랑스는 조별 예선 때 답답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그리즈만은 프랑스 공격진이 부진한 원인으로 꼽혔다.

 

물론, 프랑스는 그리즈만의 활약에 힘입어 결승전에 진출했다. 하지만 우승하지 못했다. 이후 그리즈만은 대표 팀에서 1년 가까이 무득점에 그쳤다.

 

1점 차 승부에 강하다

 

그리즈만의 성적 자체는 호날두와 메시처럼 경이롭지 않다. 그의 선수 경력 중 최다 득점은 2015/2016시즌 때 기록한 32득점이다. (챔피언스 리그-7득점, 라 리가-22득점, 코파 델 레이 3점) 해당 시즌 이외에 30득점 이상을 기록한 시즌은 없다. 그럼에도 그의 성적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유독 1점차 승부에 강하기 때문이다.

 

1점 차 승부에 강한 선수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 사람들이 극적인 승리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적으로 결승 골을 기록한 선수들은 언론과 대중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런 경우가 많은 선수는 ‘Mr. Clutch’라고 불리기도 한다.

 

1점 차 승부에 강한 것은 나쁜 게 아니다. 특히, 그리즈만은 레알과 바이에른 같은 팀들을 상대로 승부사 기질을 보여줬다. 그러나 알바니아처럼 매우 약한 상대에게도 이 기질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는 상대의 수비 방식 차이 때문이다. 대부분 강팀은 공격을 위해 라인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뒤 공간이 노출되는 빈도가 잦아서 그리즈만이 침투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넓다.

 

그러나 약팀들은 아예 수비만 한다. 그만큼 뒤 공간이 노출되는 빈도가 낮아서 침투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 이스코나 에당 아자르, 네이마르 같은 선수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활용해 공간을 넓혀 이를 극복하지만, 그리즈만은 기술력이 떨어지기에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

 

계륵

 

그리즈만은 쓰자니 포기할 게 많고, 안 써도 포기할 게 많은, ‘계륵’이다.

 

그리즈만이 오기 전에 아틀레티코는 지금보다 강한 팀이었다. 높이와 힘, 강한 몸싸움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력으로 상대를 압박해 다양한 공격 경로를 확보했다. 당시 주전 선수들의 기량이 최전성기였던 레알과 바르사 같은 팀들도 아틀레티코에 고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높이와 힘을 상실했다. 공격의 다양성도 많이 줄었다. 이는 시메오네의 플랜 B 부재 문제와 가비, 펠리페 루이스 같은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 영향, 그리고 실패한 이적생들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리즈만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시메오네의 플랜 B 부재와 이적생들의 부진을 비판하기보다 왜 플랜 B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이적생들이 부진 하는 원인을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대표 팀 역시 마찬가지. 현재 프랑스는 역대 최강의 공격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가 그리즈만 때문에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최적의 조합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는 대표 팀의 경기력 부진으로 이어졌다.

 

냉정하게 말해서 레블뢰 군단은 그리즈만 보다 킬리앙 음바페의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그만큼 음바페의 경기 중 영향력이 그리즈만의 그것보다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줬던 경기가 지난 독일과의 A매치 경기다. 이때 앙토니 마샬과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음바페로 이어진 프랑스의 삼각편대는 오히려 그리즈만이 있을 때보다 더 막강하고 역동적이었다. 이 경기 이후 몇몇은 “프랑스는 그리즈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리즈만을 잘 알고 있는 시메오네와 데샹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오히려 더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주전으로 쓰는 이유는, 그리즈만은 그리즈만이기 때문이다.

 

그리즈만의 존재만으로도 상대는 엄청난 위압감을 느낀다. 생각해 보라. 그리즈만이 있는 선수단과 없는 선수단의 무게감을 말이다.

 

축구는 득점해야 이기는 스포츠고 전술과 경기력 문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압박감처럼 수치로 정의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은 것도 있다. 인간은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고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 시즌 그리즈만이 부진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가 반등하지 못한다면, 그는 ‘한물간 선수’로 취급될 것이고 아틀레티코와 프랑스 역시 그의 선발 출전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프로의 세계는 치열하다. 뒤처지면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 그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그리즈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