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베트남 감독, 한국에서의 경력을 되돌아보며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베트남 국가 대표 팀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총 26번의 감독 교체가 이뤄졌을 정도로 감독들의 무덤으로 악명이 높다. 그런 베트남 국가 대표 팀의 지휘봉을 잡은 인물은 다름 아닌 박항서 감독이다.

 

박항서 감독은 역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베트남 국가 대표 팀 감독에 선임됐다. 베트남 언론 ‘탄닌’은 “한국에서 박항서 감독의 평판이 좋다. 특히,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박항서 감독에 대한 기대감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박항서 감독은 어떤 경력을 보냈을까?

 

➀짧은 선수 시절

 

박항서 감독의 선수 생활은 길지 않았다. 1981년에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 은행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곧바로 육군에 입대해 3년 동안 군 복무를 치렀다. 이후 그는 1984년에 럭키금성 황소(오늘날 FC 서울)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29살이 되던 1988년에 은퇴를 선언했다.

 

➁오랜 코치 생활, 그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

 

박항서 감독은 1989년부터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코치직을 시작한 곳은 선수 생활을 마감한 럭키금성 황소였다. 그는 그곳에서 1996년까지 일했고,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한국 국가 대표 팀 트레이너로 뽑혀 한국 국가 대표 팀과의 인연을 쌓았다.

 

그 이후 박항서 감독은 2000년에 한국 국가 대표 팀의 수석코치로 발탁됐는데, 당시 한국 국가 대표 팀은 허정무 감독이 사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후임으로 선임된 인물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네덜란드 국가 대표 팀을 이끌고 4위를 차지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박항서 수석코치는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선수단의 융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은 한국 국가 대표 팀을 이끌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다. 만약 박항서 수석코치가 없었다면, 히딩크 감독의 4강 신화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➂한국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의 순탄한 코치 생활과 달리 감독 생활은 다사다난했다. 히딩크 감독이 떠나자 박항서 감독은 그의 후임으로 한국 국가 대표 팀 감독에 선임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항서 감독은 한국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었다.

 

본래 축구협회는 박항서 감독이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부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까지 대표 팀을 이끈다고 발표했는데, 남광우 사무총장이 “박 감독의 임기는 부산 아시안 게임까지며 본인의 요청에 따라 아시안게임 이후 새 감독을 선임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에 박항서 감독은 반발했다.

 

또한, 축구협회가 “히딩크 감독이 고문자격으로 한국 국가 대표 팀의 벤치에 앉게 됐다”고 발표하자, 박항서 감독은 축구협회의 강압적인 운영에 불만을 토로했다. 여기에 박항서 감독이 부산 아시안 게임이 끝날 때까지 무보수로 사령탑을 맡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축구 협회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에 김진국 기술위원장은 국가 대표 팀의 명예를 손상했다며 박항서 감독에게 엄중 경고를 내렸다.

 

가까스로 박항서 감독은 한국 국가 대표 팀 감독이 됐지만, 한국 국가 대표 팀이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얻는 데 그치자 경질됐다.

 

➃다사다난한 감독 생활

 

이후 박항서 감독은 2005년에 새롭게 창단한 신생팀 경남 FC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가 이끌었던 경남 FC는 2007년 정규 리그 4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비록 경남 FC는 포항 스틸러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에 패해 탈락했지만, 신생팀을 이끌고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박항서 감독의 능력과 업적은 높게 평가받았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이 구단 내부 문제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이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2007년 12월에 전남 드래곤스 감독으로 부임한 박항서 감독은, 이듬해 팀을 이끌고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에 전남 드래곤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최종 4위의 성적을 기록하는 쾌거를 올렸다. 하지만 2010년에 팀이 부진하자 사임했다.

 

➄아쉬움이 남은 상주 상무와 창원시청

 

2013년에 상주 상무 감독에 선임된 박항서 감독은, K리그 챌린지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팀을 K리그 클래식에 승격시켰다. 하지만 상주 상무는 승격하자마자 1년 만에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됐다. 그리고 1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다시 승격한다.

 

그러나 2015년을 끝으로 박항서 감독은 상무 상주를 떠났는데, 그는 팀을 떠난 이유가 부대장과 갈등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부대장이 부임한 이후 자신이 선수 선발에 결정 권한이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후 박항서 감독은 2017년에 박말봉 감독의 뒤를 이어 창원시청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창원시청은 감독 경험이 풍부한 박항서 감독을 기대했지만, 여름 이적시장 때 전력 보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박항서 감독은 창원시청에 7위라는 성적을 안겨주는 데 그쳤다.

 

[사진 출처=한국프로축구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