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세리에 A

세리에A, 뿌리 깊은 문제점은 바람에 아니 뮐세

[풋볼 트라이브=류일한 기자] 세리에A는 라 리가와 프리미어 리그, 분데스리가와 함께 유럽 4대 리그 중 하나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UEFA 랭킹 1위를 유지하며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오늘날 세리에A는 많은 이들로부터 변방 리그 취급을 받는다. 10년 전만 해도 인터 밀란과 AC 밀란 같은 구단에 이적하는 스타들이 많았지만, 오늘 날에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지난여름에는 세리에A의 인기가 워낙 없다 보니 중계료 감소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세리에A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고질적인 문제점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국내 자본의 어려움

 

세리에A의 전설들과 팬들은 “돈으로 명예를 살 수 없다”며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 같은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과 파리 생제르망을 비판한다.

 

그렇다. 돈은 명예를 사지 못한다. 하지만 만들 수 있다. 세리에A 구단들의 성공에 막대한 자본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 축구가 그렇듯이 세리에A 역시 자국 경제와 함께 발전했다.

 

세리에A가 1985년 헤이젤 대참사를 기점으로 유례없는 황금기를 맞이했을 때 이탈리아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영국의 GDP를 넘어섰을 정도였다.

 

이러한 경제 호황은 세리에A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 시기 막대한 부를 축적한 석유 재벌가 마시모 모라티와 언론계를 장악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그리고 자동차 재벌인 아넬리 가문 등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우며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리고 영입된 선수들은 리그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경제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가족 단위의 중소기업 비중이 높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가 본격화 되면서 자국 대기업들과 외국계 기업들이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로비 활동과 홍보 및 인수 활동을 시작하자 경제의 원동력이었던 중소기업과 함께 중산층이 빠르게 무너졌다.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던 경제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공공부채와 채권금리 문제와 정치가들이 대기업 편의주의적인 법률을 제정하면서 저성장률을 이어갔다. 여기에 새로운 구원자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유로화 정책은 오히려 경제 몰락을 이끌었다.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북부와 남부의 경제 양극화 현상도 지적할 수 있다. 반도의 북부인 밀라노와 토리노 같은 도시들은 공업과 경제 및 금융업이 발전해 부유한 편이다. 반면, 나폴리와 시칠리아 같은 남부는 농업과 관광 산업에 의존하는 형태다 보니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여기에 지구 온난화로 사막화 현상까지 겹치자 농지는 황폐해졌다.

 

결국,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떠안고 있던 이탈리아의 경제는 2007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완전히 몰락했다.

 

경제 불황은 세리에A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세리에A 구단주들은 이탈리아 자본가들이다. 이들은 불황으로 경영난에 빠지자 투자 규모를 줄였다. 여기에 리그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구장 문제와 부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만약 이 시기에 세리에A가 프리미어 리그처럼 외국 자본에 개방적이었거나 대처를 잘 했다면, 이 위기도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었을 테다. 그러나 이 당시 세리에A는 폐쇄적이었고, 2006년 승부 조작 사건인 칼치오폴리로 이미지가 크게 악화됐다.

 

이 때문에 외국 자본가들은 세리에A 구단을 인수하는 것을 꺼렸다. 프리미어 리그는 외국 자본에 개방적이고 영국 시장 자체가 넓다 보니 투자 대비 이득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유럽의 금융과 은행업의 중심지 중 하나인 런던의 도시적 특성 때문에 자신들의 인지도를 위해, 그리고 인맥 형성을 위해 구단을 인수하는 이유도 있다.

 

반면, 세리에A는 외국 자본에 폐쇄적이며, 유색 인종에 비호의적이다. 여기에 막대한 부채 문제로 선뜻 인수자가 나서지 않았다. 경제 위기와 마피아, 인종 차별 같은 사회적인 문제점들이 있었다. 물론, 런던처럼 금융과 은행업의 도시인 밀라노가 있지만, 투자 대비 이득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 특히, 남부 이탈리아 구단들은 빈약한 경제 구조 때문에 경제적 이득이 없다.

 

인종 차별 문제

 

예나 지금이나 이탈리아와 세리에A는 인종 차별 문제로 고민이 많다. 아니, 이는 유럽 사회 전체의 문제다 보니 쉽게 해결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축구에서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세리에A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세리에A에는 인테르처럼 외국 선수와 유색 인종들에 개방적인 구단도 있지만, SS 라치오나 엘라스 베로나처럼 배타적인 구단들도 많다. 이러한 구단의 성향은 팬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특히, SS 라치오는 매 시즌 인종 차별 문제로 시끄럽다. 당장 최근에만 해도 안네 프랑크 합성 사진으로 논란이 되었을 정도다.

 

인종 차별 문제가 개선되지 않다 보니 이에 지친 유색 인종 선수들은 아예 해외 리그 이적을 선택한다.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리그를 떠나는 선수들의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마피아

 

1861년, 이탈리아는 사르데냐 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명재상 카밀로 카보우르, 그리고 붉은 셔츠 단의 수장인 주세페 가리발디 등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통일을 완성했다.

 

하지만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8년부터 약 14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분열된 이탈리아는 거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피아’다.

 

본래 마피아는 토착 무력집단으로 출발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강력한 전제 군주가 드물었던 이탈리아였기에 집단 단위의, 폐쇄적인 규율과 법도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 이탈리아가 통일된 후에는 아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범죄 집단으로 성장했다.

 

왕정은 마피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되려 마피아의 영향력은 왕국의 발전과 함께 더욱 확장됐다. 이들은 이탈리아의 정치, 경제, 사법에 걸쳐 세력을 확장했고, 전국적인 조직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마피아들이 자신의 통치에 영향을 줄 것이라 우려했던 베네티도 무솔리니는 1925년부터 검찰과 경찰, 군까지 동원하여 철저한 마피아 탄압을 시작했다. 마피아는 무솔리니 정부에 대항했지만 무기력했다. 이를 버티지 못한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때 이탈리아의 사정을 잘 알지 못했던 미국이 마피아와 협력하며 문제는 악화됐다. 미군을 등에 업은 마피아들은 전쟁 이전보다 더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를 보다 못한 이탈리아 정부는 마피아들과 전면적인 전쟁을 벌였지만, 동유럽의 이민자들이 새로운 마피아 세력으로 자리매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 2008년에 경제 위기가 심화하자 자금 세탁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확보한 마피아들이 건설, 소매업, 운송과 숙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축구에서도 그 영향력은 마찬가지다.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인 영화 ‘대부’에서 볼 수 있듯이 마피아들은 도박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한다. 공교롭게도 도박 산업은 스포츠 산업과 함께 발전을 거듭했다.

 

세리에A라고 마피아들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얼마 전 유벤투스의 안드레아 아넬리 회장은 마피아와 연관된 서포터스 그룹과 접촉에 경기 티켓을 판매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처럼 마피아가 세리에A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제2의 칼치오폴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칼치오폴리라는 거대한 몸살을 앓은 만큼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하는 세리에A다.

 

선수 유출

 

지난여름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한 다니 알베스는 “파울로 디발라는 미래에 대단한 일을 해낼 것이다. 그가 자신의 재능을 좀 더 터트리고 싶다면, 언젠가는 유벤투스를 떠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상당히 뼈 있는 말이다. 이는 파울로 디발라의 재능을 극찬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유벤투스와 세리에A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세리에A는 히카르도 카카를 비롯해 전 세계에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그러나 칼치오폴리 사건을 기점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들은 하나둘씩 해외 리그로 떠났다.

 

여기에 전 세계에 수많은 팬층을 가지고 있는 인테르와 밀란 같은 명문 구단들의 몰락으로 세리에A는 힘을 잃었다. 유벤투스가 있었지만, 그들의 우승 경쟁은 과거 전성기 때만큼 치열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승 경쟁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이것은 선수들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의 상실로 이어졌다.

 

힘의 상실은 즉 매력의 상실이다. 세리에A에는 더 이상 스타들을 잡을 수 없는 명분이 없다. 예전만큼 확실한 스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리그를 상징하는 선수들 역시 선배들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런 한계를 느꼈던 폴 포그바 같은 선수들은 해외 리그 이적을 선택했다.

 

물론 프란체스코 토티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지안루이지 부폰, 안드레아 피를로 같은 자국 선수들은 떠나지 않았다. 이들마저 떠난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세리에A의 몰락을 인정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국 선수들도 해외 리그 이적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안루이지 돈나룸마처럼 미노 라이올라 같은 ‘슈퍼 에이전트’를 둔 유망주들은 더욱 그렇다.

 

오늘날의 축구계는 세리에A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같은 구단에서 뛰어야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다. 조금 자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오늘날 세리에A는 아이비리그 대학교 진학을 위한 명문 고등학교나, 명성은 있지만 예전 같지 않은 오래된 대학교들 같다.

 

말 그대로 지금 세리에A는 뛰어난 재능들을 붙잡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렇다 보니 거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는 돈나룸마 같은 자국 선수들도 과거 그들의 선배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보다 해외 리그 진출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운다. 당장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하지만 즉각적인 문제 해결은 임시방편일 뿐, 슬픔의 본질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이는 세리에A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에는 아시아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양 밀란의 부활이 시급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명성의 회복은 어려울 듯하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